「노벨」문학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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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74년도「노벨」문학상은「스웨덴」의「하리·마르틴손」과「에이빈트·욘손」에게 공동 수여키로 발표되었다.「스웨덴」한림원의 이 같은 발표에는「스웨덴」사람들까지도 놀란 모양이다. 함께 후보에 올라있던 영국의「그레이엄·그리」이나 미국의「솔·벨로」와 같은 문학계의 거성에 비기면 이들은 2류 작가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나「스웨덴」한림원은 거성들을 외면하는 묘한 버릇이 있는 모양이다.
가령 1910년에는「마크·트웨이」과「톨스토이」를 제쳐놓고 독일의「플·폰·하이제」라는 무명이나 다름없던 작가에게 수상하였다.
56년에는 또 같은「스페인」에서도「올테가·이·가세트」를 제쳐놓고「환·히메네스」에게 영예를 안겨 주었다. 「마르셀·프루스트」가 죽은 22년에는「스페인」의「베나벤테」가 받았다.
그리고 보면「헨리·제임즈」도「체흡」도「조지프·큰래드」도그리고「D·H·로텐스」도「스웨덴」한림원으로부터 외면 당했다. 그 대신「아이슬란드」「라크스네스」(55년), 「유고」의「안드리친」(61년),「펄·벅」(38년),「이탈리아」의「카지모도」(59년),「베나벤테」등이 받았다. 이들의 대부분은 이젠 거의 완전히 잊혀지고 있다.
물론「키풀링」「베르그송」「토마스·만」「T·S·엘리어트」「포크너」등에게 상이 돌아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1901년이래「노벨」문학상을 받은 약 70명의 문학자「리스트」를 훑어보면「스웨덴」한림원의 문학적 감식안을 의심하게도 만든다.
이래서「노벨」문학상의 정치적 내막을 그럴싸하게 캐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사실 정치적 중립주의에 매우 민감한「스웨덴」한림원으로서는 문학 그 자체보다 지정학적 고려에 더 신경을 쓰지 않을 수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스웨덴」인의 수상자수가 전체의 10%를 넘는 반면에「아프리카」와 중국엔 한 사람도 없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58년에「파스테르나크」에게 수상키로 한 것도 소련과「스웨덴」과의 정치적 관계 때문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또는「톨스토이」를 빠뜨린 데 대한 뉘우침에서였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파스테르나크」지명으로「흐루시초프」의 노여움을 사자, 다시 그를 무마하기 위해서 65년에 새로「슬로호프」에게 수상했다고도 보는 것이다.
만약에 이런 게 사실이라면「나보코프」가 수상할 가망은 전혀 없다. 그는「러시아」태생이지만 지금은 미국 시민으로서「스위스」에 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월남이 어떻게되든 공산화만 안되면 상관없다고 발언한 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다수결에 의해「노벨」문학상이 결정된다는데 가장 큰 논란의 여지가 있는 모양이다.
이번「스웨덴」한림원의 결정은「노벨」문학상에 대한 온 세계의 회의를 더욱 짙게 만들어 줄 것만 같다. 「노벨」상을 위해서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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