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적 압사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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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추석을 이틀 앞둔 28일 밤 귀성객으로 일대 혼잡을 빚은 서울 용산역에서 또 다시 사자 4명, 중경상자 39명을 낸 일대「압사사고」가 벌어지고 말았다. 질서를 잃은 대군중이 일시에 좁은 통로를 뚫고 나가려고 할 때 필연적으로 빚어지게 마련인 이른바 「스탬피드」현상은 우리 나라에서도 이미 몇 차례의 쓰라린 전례를 남겼는데도 불구하고, 또 다시 이 같은 전철을 되풀이했다는 점에서 먼저 한심스럽다 할 수밖에 없다.
본래, 총성 등에 놀란 짐승떼가 우르르 몰려 좁은 길목을 앞다투어 도망치려고 함으로써 벌어지는 이 같은 현상은 그래서 이성이나, 질서, 또는 집단 심리학을 이해할 줄 아는 지도자가 있는 사회에서는 처음부터 일어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또 다시 참사가 저질러지고 만 것은 과거 60년 1월26일의 서울역에서의 대압사사고(사망 38명·부상 49명), 65년 10월5일 제46회 전국체전에서의 개장식 참사(사망13명·부상 1백여명) 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철도 당국자·경찰·귀성객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이 같은 이성이나 질서감각이 마비되고 있었다는 증거라 하겠으며, 특히 이날 장내 정리나 승객의 안전과 공안유지에 책임을 가진 당국자들에게 사소한 사고도 미연방지하겠다는 책임감이나 능력이 전혀 결핍돼 있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이날의 사고원인으로서는 ①당국의 빗나간 귀성여객수 추정(예상 2만5천명에 4만여명) ②「폴랫폼」연결용 구름다리의 안전성 미흡 ③4, 5번「폼」과 6, 7번「폼」에로의 무질서한 승객 유도 ④여객수에 비해 엄청나게 부족한 안내원 배치(35명) 등이 지적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이 범한 더욱 결정적인 잘못은 현장에 있던 경찰·공안원·해병 등이 마구 호루라기를 불어대, 가뜩이나 초조한 귀성객들을 더욱 흥분시켜 이리 뛰고 저리 뛰게 했다는 점인 것이다. 일시에 4만명이나 되는 승객을 3, 4개의 임시 열차로 수송하려 하면서 특별한 안전대책을 염두에 두지도 못 했으며, 한꺼번에 몰린 이 같은 군중을 호루라기로 안내하는 한국 철도의 풍경 등 모두가 원시적이며 국치적인 사고의 요인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무튼 이번 용산역의 사고는 철도청의 운영 미숙과 시설미비라는 문제점에 대한 책임이 근원적인 차원에서 다시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
최근 용산역은 승차 인원수가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졌으나 시설개량이나 구내확장, 승객 분산을 위한 제도상의 조치 등은 전혀 없었다. 사고를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
서울등 대도시의 인구집중 현상은 좀처럼 줄어들 가망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뿐만 아니라 어느 곳에선가 앞으로 또 언제 이 같은 사고가 다시 일어날는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추석은 우리 나라 최고의 명절이라고 한다. 오곡이 무르익는 가장 아름다운 절후. 누구나 고향을 찾아가려는 향수가 일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시민들 스스로가 공중도덕 지키면서 혼란을 일으키지 않는 문화국민으로서의 자세를 다시 한번 가다듬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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