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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과학기술 전문인력 … '과학 큐레이터'로 나서 이공계 기피 줄일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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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은퇴했다고 해서 30~40년 쌓은 과학기술 전문지식을 그대로 사장시키는 건 국가적으로 큰 손실입니다. 후대를 위해서 산업계·학계에다 전수를 해줘야지요.”

 이충희(79·사진) 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이 퇴직 과학기술인들의 ‘재능기부’ 활동을 12년째 이끌어오는 이유다. 1999년 현업에서 물러난 뒤 그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전문연구위원으로 되돌아왔다. 2002년부터 이 기관이 가동해온 ‘고경력 과학기술인 활용·지원사업’(ReSEAT)의 총책임자(발전협의회장)로 있다.

 ReSEAT 프로그램은 은퇴한 과학기술인들이 경험과 연륜을 바탕으로 기업체나 연구소가 필요로 하는 정보와 기술을 발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대전 대덕연구단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학자·엔지니어 등 250여 명이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전 원장에게 이 일은 단순히 퇴직자를 대우하는 차원이 아니다. 물리학자로 한평생을 산 그는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화되면 고급 과학기술 인력 부족 현상이 일어나고 장차 경제 발전에도 큰 지장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며 “대안으로 은퇴한 과학기술인들의 30~40년 축적된 전문지식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회원들은 인터넷으로 논문을 보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정보 수집을 위해서 국제회의에 참석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에 일본 도쿄대 공학박사 출신의 한 회원은 중소 공구류 제조업체의 기술 멘토로 참여해 신소재 개발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고 성공 사례를 소개했다.

 이공계 기피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ReSEAT 회원들은 ‘과학 큐레이터’를 자처하고 나서기도 한다. 지방 초·중등학교에 내려가 과학 강연을 하는 것이다. 이 전 원장은 “어린아이들이 일찍부터 과학에 눈을 뜰 수 있도록 도와주면 나중에 좀 더 이공계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해외에선 이미 은퇴한 과학기술 인력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 전 원장은 일본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퇴직 전문인력이 자신들의 노하우를 가지고 중소기업에 기술지원을 나가거나 아예 후진국에 가서 원조사업을 벌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원장은 “우리 회원 수(250여 명)는 퇴직 과학기술인의 2~3%에 불과하다”며 “1000명 이상으로 확대해 발전시켜 나가면 우리나라 청년의 이공계 기피 현상도 해소할 수 있고 국가 경제와 과학기술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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