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정치에 희생되는「영원한 전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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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시아」경기대회의「슬로건」은『영원한 전진』이다. 이「슬로건」은 다른 대륙의 국제종합대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색적인 것이다.
50년「뉴델리」에서 제1회 대회가 열렸을 때부터 이「슬로건」이 채택된 것을 보면「아시아」국가 등이 오죽 못 살고 후진성에서 탈피 못했으면 이런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던가를 알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평화스럽고 발전만을 의미하는 이「영원한 전진」은「테헤란」의 제7회 대회를 끝으로 그 막을 내린 감이 없지 않다. 이는 대회의 출전국 수가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아랍」·중공계 등의 정치성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이런 정치성의 개입이 없지는 않았다.
62년 제4회 대회가「자카르타」에서 열렸을 때 당시 아·아「그룹」의 기수로 자처한「인도네시아」의「수카르노」대통령은 정치적인 이유로 자유중국, 종교상의 이유로「이스라엘」을 초청치 않아 대회자체가 IOC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큰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정치·종교상의 격랑에 휩싸였던「아시아」대회는 그후 IOC가「인도네시아」를 IOC로부터 축출하는 등 강경책을 씀으로써 4년 후인 66년의「방콕」대회부터는「아시아」경기연맹(AGF) 가맹국이면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순수한「스포츠」의 제전을 즐길 수 있는 원상태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말하자면 62년의 종교 및 정치성의 개입은 대세에 어울리지 않게「인도네시아」만이 북 치고 장단을 맞추다가 사그라진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비해 이번의 경우는 처음부터 정치성이 계획적으로 개입됐다.
아무 잘못도 없는 자유중국을 AGF로부터 내쫓고 그 대신 중공을 끌어들여 대화 개막 전부터 노골적인 정치색을 보였다.
그런 가운데도「이란」은「아랍」제국의 공적인「이스라엘」을 초청했다. 「이란」은 같은「아랍」계통이면서도 대회의 적법성을 살리기 위해「이스라엘」을 초청한 것인데 이것이 끝내는 더 큰 정치성의 개입을 초래하고 말았다.
그 결과「쿠웨이트」가 축구에서「이스라엘」과의 경기를 거부했고「아랍」과 같은 외교국인「파기스탄」은 농구에서「이스라엘」을 기피했다.
여기에 중공·북한이 가세했다.
중공은「펜싱」「테니스」북한은「펜싱」축구에서「이스라엘」을 기피했는데 그 이유는「아랍」세에 동조하기 위한 정치적인 배려였다.
그 중에도「아랍」세의 기피는 중동전쟁의 여과라고 하지만「파키스탄」기피현상은 이 대회의 운명을 점치는 심각한 징조가 아닐 수 없다.
「파키스탄」은 78년 제8회 대회의 개최국으로 선정돼 있다. 그런「파키스탄」이「이스라엘」을 기피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는 앞으로 획기적인 돌변이 없는 한 다음 대회에는「이스라엘」을 처음부터 초청치 않아 62년의「자카르타」대회 때와 같이「아시아」대회가 IOC로부터 공인을 받지 못할 사태를 몰아오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아시아」축구연맹은「이스라엘」을「아시아」경기대회 및「아시아」지역의 각종 대회에 초청치 않기로 결의했다.
이 결정은 축구에만 적용되는 것이지만 이 추세는 유행병처럼 각 종목에 퍼져「이스라엘」이 끝내는 AGF로부터 축출되지 않는다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게됐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아시아」경기대회가 과거의 오순도순했던 우정의 경쟁에서 정치·종교상의 압력으로 으르렁거리는 살벌한 대회로 변했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과「아랍」세간의 선수들 사이에는 중동전이 재현되었으며 남·북한의 대결은「스포츠」를 넘어선「이데올로기」의 전쟁터가 되고 말았다.
이는 문호의 개방으로 회원국이 많아짐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된 것이긴 하지만 이 때문에『영원한 전진』은 이제 한낱 구호에 그치고 그보다는『영원한 전쟁터』로 됐다고 봐야겠다.
①정치에 희생되는「영원한 전진」
②「이란」텃세로 얼룩진 우정
③변색된 AFF…궁지의 한국
④한국「종합4위」점검
가, 남북대결서 승리
나, 개인경기두각, 구기의 퇴보
다, 축구·사격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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