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의 해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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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23일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와 제4호를 이날 상오 10시를 기해 해제한다고 발표하고, 다만 동 긴급조치 위반으로 재판에 계류 중에 있거나 처벌을 받은 자에게는 그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이 결정은 동 긴급조치에 따르는 군법회의 설치를 규정한 대통령 긴급조치 제2호(1월 8일자) 및 국민생활의 안정을 위해 저소득층의 소득세 감면 등을 규정한 동 제3호(1월 14일자)의 해제를 유보하고 있으나, 전기한 두 긴급조치가 이미 해제한 개헌언동 및 민청학련 관계사건 처리를 위한 재판절차 규정이거나 세법개정을 전제로 한 한시법적 조치였다는 점에서 연초이래 선포됐던 일련의 비상조치는 사실상 전부 풀리게 됐다는 것을 뜻한다.
이번 결정에 대해서는 의당히 국내외 각계각층으로부터 즉각적인 환영의 뜻이 답지하고 있으며 그 연쇄효과는 비단 이 조치의 직접적인 혜택을 받게될 1백 30명의 학생 및 몇몇 수배 중에 있는 혐의자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로써 경색일로를 걷고 있던 국내정국에 화합과 회춘의 기운이 감돌게 될 것은 물론, 한국 국내문제에 비판적이던 우방의 일부 조야 인사들과 또 특히 목전으로 박두한 「유엔」총회를 앞두고 여러 우방대표들에게 보다 적극적인 대한 협조의 계기를 마련해 줌으로써 우리 외교의 전도에 밝은 빛을 던져줄 것이 틀림없다.
박 대통령 자신은 이날 발표된 특별담화를 통해 이번 결정의 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즉 지난 8·15 경축식전에서 저질러진 북괴도당들의 악랄하기 이를 데 없는 음모를 목격한 국민들은 이 참상을 계기로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새삼 재인식하였을 것이고, 그 때문에 도리어 『국민총화가 굳건히 다져졌음을 마음 든든하게』생각하면서 『이제 지금이 대통령 긴급조치를 해제할 시기라고 결단』한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의중은 이미 지난 20일 고 육 여사의 국민장을 무사히 끝마친 데 대한 특별담화 속에서도 표명된 바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날, 비명에 간 고 육 여사의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남녀노소와 사회적 지위 또는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각계각층을 망라한 수백만·시민들이 보여준 애끓는 조의와 국민적 단합의 실상을 눈여겨보면서 이 같이 뜨거운 국민적 애도에 보답하는 길은 『대통령의 직책인 국가보위와 국민의 자유 복리증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던 것이다.
고 육 여사의 순교자적인 죽음은 사실 생득적으로 인정 많고 착한 한국 국민의 심저를 흔들어 은연중 하나로 뭉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으며, 전 국민으로 하여금 새삼 투철한 대공 경각심과 일체의 「테러」행위에 대한 분격을 일으키게 함으로써 홀연히 국민적 단합을 실현시켜준 기적을 낳게 했던 것이다.
이처럼 순수하게 뭉친 국민적 단합의 힘은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국내외로부터의 시련을 극복하는데, 무엇보다도 강한 추진력을 주는 무서운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박 대통령도 지적한바와 같이 긴급조치의 해제가 곧 북괴의 적화통일야욕의 포기를 뜻하는 것이 아님은 너무도 명백한 것인 만큼 더욱 투철한 반공의식을 제고하고, 더 한층 굳건한 국민적 단합으로써 우리에게 닥쳐오고 있는 국내외로부터의 모든 도전을 이겨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박 대통령이 내린 이번 긴급조치 해제의 용단은 그 폭이 더욱 넓혀져 국·내외에 대해 자랑스럽게 우리 국민의 단합된 민주역량을 과시하는 실증을 보여주는 데까지 전진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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