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장 상 前 총리서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저는 물론 가족들에게도 이루 다 못할 마음고생이었지요. 마치 거대한 돌풍에 휘말렸다 땅으로 떨어진 기분이었습니다."

지난해 7월 헌정사상 첫 여성 국무총리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국회 청문회라는 문턱 앞에서 좌절해야 했던 장상(張裳.64.이화여대 인문학부 기독교학전공 교수) 전 총리서리.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험한 욕을 먹을 정도로 악(惡)하게 살지는 않았는데…'라는 생각에 당시엔 분하기 짝이 없었다"며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을 한 것 같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지난 18일 충남 아산 온양관광호텔에서 열린 여성유권자연맹(회장 李春鎬)의 제18차 정기총회.

張전총리서리는 이날 행사에 강사로 초청돼 한시간 가량 강연을 했다. 주제는 '여성시대와 여성지도력'. 스스로는 "그간 여기저기 다니며 사람도 많이 만나고 강연도 여러 차례 했다"고 말했지만 일반인들 앞에, 그리고 무엇보다 언론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는 오래간만이었다. 그는 최근 이 단체의 고문직도 맡았다.

박수로 자신을 맞이하는 청중 앞에선 張전총리서리는 "내가 지난해 수모를 겪었기 때문에 박수소리가 큰 것 아니냐"는 가벼운 농담으로 입을 뗐다.

그리고는 "본론에 앞서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을 나에 대한 궁금증을 좀 풀어줘야 할 의무를 느낀다"며 총리직 낙마 이후의 생활과 소회를 털어놨다. 강연을 마친 뒤에는 몇몇 신문사 기자들과의 가벼운 인터뷰도 있었다.

우선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고 난 뒤 그는 약 한달 동안 칩거(蟄居)를 했다고 한다. 외부인과의 접촉은 물론 신문이나 TV도 한켠으로 미뤄둔 채 가장 작은 방에 들어앉아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찬송가를 틀어놓고 성경을 읽으며 지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상태에서 상처 입은 마음이 쉽게 다스려질 리가 없었다.

머릿속엔 수많은 상념과 감상이 떠올랐다 사라져갔다.

그중 먼저 떠오른 것은 청문회에서 자신의 도덕성에 씻지 못할 흠결을 낸 국회의원들에 대한 서운함이었다고 한다. 평생을 제자들에게 "도덕적인 인간이 돼라"고 강조해 왔던 자신이었기에 충격은 더 심했다는 것이다.

張전총리서리는 아직 앙금이 남았는지 "청문회라는 말에는 분명히 들을 청(聽)자가 들어가는데 어떤 의원님들은 전혀 제 답변을 들으려 하시질 않더군요"라고 말했다.

다음으로 떠오른 것은 힘들고 고단했던 지난날의 삶이었다고 한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단둘이 끼니를 걱정하며 방과 후엔 땔감을 하러 다녀야 했던 어린시절과 유학비 마련을 위해 하루에도 3~4건씩 과외를 해야 했던 대학시절의 추억이 금세 손에 잡힐 듯 떠올랐다는 것이다.

주머니가 넉넉지 못해 미국 학생들이 입다버린 옷을 주워 입어야 했던 유학 시절을 생각했을 때는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했단다.

그럴수록 청문회 때 "얼마나 돈이 많기에 1960년대에 미국 유학을 다녀 왔느냐"고 물었던 모 국회의원이 원망스러웠지만 "돌팔매질을 당하면 그 돌들로 터를 닦으라"는 옛 유대 속담을 되새기며 화를 삭였다고 한다.

그리고 마음이 좀 가라앉으면서 '지난 삶을 반추한 김에 자서전을 쓰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현재 초고가 대부분 완성된 그의 자서전 끝부분엔 "이제 다시 대학 신입생이 된 마음으로 여생을 보내겠다"는 각오가 들어 있다.

실제로 그는 1년여 남은 교수생활을 마친 뒤에도 꾸준한 독서와 함께 강연.봉사활동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침 현 정부에 여성장관이 4명이나 탄생한 것과 관련, 여성의 정치참여에 대한 그의 의견을 물었다.

"제 경우엔 부덕의 소치라고 생각하지만(웃음) '대한의 딸'로 살아가기가 힘든 것은 사실이죠. 하지만 갈수록 활발해지는 여성의 정치참여를 목격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우리 대(代)는 아닐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우리나라에도 여성 국무총리는 물론이고 대통령도 나올 거라고 확신합니다."

아산=남궁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