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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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소위 역사라는 것은 과거의 어떤 사실(사건)을 기술한 것을 보고 주관적인 의미에서 역사 또는 사기라고 할 경우가 있고 또 과거의 어떤 사실(사건) 자체를 객관적 의미에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사실은 역사상의 사실이므로 사실이라고도 말한다. 객관적인 사실의 존재가 역사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는 역사상의 사실의 발생이나 경과를 직접 관찰하거나 경험할 수가 없고 사실이 남긴 흔적인 유물·유적·문고·회화·금석문·전설·구비 등을 연구하여 간접적으로 사실의 진상을 구명하고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어떤 사실의 존재를 우리들에게 알려주는 그러한 흔적을 우리는 사료라고 하며 사료는 사실자체가 아닌 것은 물론이고 사실을 알려주는 귀중한 재료이다. 따라서 사료의 수집은 역사학의 출발점인 동시에 사기발생의 원천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근대사학은 사료의 수집과 엄밀한 비판과 선택의 위에서 형성되는 과학적인 역사를 지향하고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편견이나 독단에서의 해방이 과학적인 역사학의 전제조건이 되는 것이다. 가령 신화에서 오는 독단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민족만이 선민이다, 혹은 천강민족이다라고 하는 따위의 주장이나 자기민족은 전세계민족을 통일하는 신칙이나 신훈을 받고있다는 등의 역사는 개인의 주관적 견해로서는 성립할 수 있으나 역사로서 혹은 학설로서 객관적인 인정을 받기는 어렵다.
일찌기 명치초년에 일본에 와서 대학에서 강사를 하면서 일본역사를 연구한 영국인 「챔바렌」박사는 당시의 일본인의 소학교나 중학교 국사교과서가 신대로부터 시작하고 제1대 신무천황부터 기원이 시작되고 있는 것을 보고「일본신화와 역사」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신무천황즉위 몇 년이라고 계산하는 것은 「신데렐라」의 대모가 육두마차로 변화시켰다는 호박의 크기가 몇「센티」냐고 계산하는 것과 같다고 비과학성을 비꼰바가 있다.
그러나 일본의 제국주의는 천황중심의 신화교육을 더욱 강화하여 천황을 현신이라고 칭하고 신화 중에 기록된 「팔현일우」를 「캐치·프레이즈」로 삼고 「대동아 전쟁」을 일으켰고 이로 인하여 패망한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경험한 사실이다. 학자 중에 혹자는 황도주의를 학설화하여 애국은 자기만이 하고 있는 것과 같이 행세하였고 일본역사의 신화를 비판하고 일본의 기원을 줄이는 연구를 한 과학적인 역사학도를 비애국자로 몰아쳤던 것이다.
일본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오늘의 일본국사를 교과서를 통하여 보면 제l대 신무천황이나 그이후의 여러 대의 천황에는 백세가 넘는 이가 많은 것으로 보아 그 연대는 조작된 것이며 이에 맞게 대대천황의 연령을 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고사기나 일본서기(위양서는 일본역사의 정통적 사료)의 기사 중 사실에 입각한 기록은 대충 5세기 이후부터라고 설명하고 있어 신화를 교과서에서 취급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이다.
신화나 전통이 그대로 과학적 역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오늘의 역사학의 상식에 속한다. 신화를 포함해서 과거의 사기나 사료를 문학적으로 해석하거나 철학적으로 해석하거나 혹은 종교적으로 신앙하는 것은 있을 수 있으나 신화나 전설이 역사적 사실의 광장에 등장하기 위하여서는 이에 부합하는 사료의 제시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신화는 마냥 신화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호머」의 「일리아스」에 나오는 「트로이」의 전쟁은 신화로만 생각하고 있었지만 1873년 「슐리만」의 「토로이」발굴로 역사상 실재한 사실로 실증된 것이다. 【전봉덕(변호사)】
필진이 바뀝니다
「파한잡기」의 필진이 바뀌었읍니다. 그동안 수고해주신 월성식 신기석 이광호 김정자 제씨에 이어 새로 김려수(성균관대교수·철학), 조순(서울대상대교수·경제학), 서인석(국회의원), 전봉덕 제씨가 필진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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