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전망의 혼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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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경련은 29일 경기가 조기에 회복될 것이라는 관계당국의 낙관적인 전망을 부인하고, 그 회복은 빨라야 75년 2·4분기 이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인플레」가 내년에도 진행될 공산이 적다는 사실은 이미 OECD등 국제기관에서도 예측한바 있으며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는 것처럼. 주요 선진국들은 상반기 중 성장률이「마이너스」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총수요억제정책을 강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수출입의존도가 70%를 상회하는 우리가 세계경제의 회복 없이 성장을 지속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가정을 인정한다면 전경련의 주장은 일단 수긍이 가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국제경제관계에 대한 판단의 차이에 있는 것이므로 이를 구명할 수 있어야만 정확한 경기전망이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여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70%를 상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아직 국제경제동향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연구검토 할 전문기관이 존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이를테면 해도 없이 출범한 항해와도 비유될 수 있다. 이제라도 국제경제동향에 대한 신속한 판단 없이는 국내정책을 제대로 집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각별히 유의해야할 것이다.
다음으로 국제경제가 예상과 같이 빨리 회복될 수 없는 것이라면, 앞으로의 경기는 국내적 요인에 의해서만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곧 정부가 내수를 자극해서 불황의 심화를 막을 것인가, 아니면 수출상의 교역조건을 좌우하는 환율을 조정해서 탈출구를 마련해 줄 것인가에 따라서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불황의 심도보다는 물가압력을 중시해서 물가대책을 우선적으로 다룰 것이냐에 따라서도 국내경기전망이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몇 가지 제한된 정책선택 관계에서 정부는 불황의 심도보다는 물가압력을 중시하는 것 같으며 이를 전제로 한다면 하반기의 불황문제는 업계의 예상보다는 더 가혹하게 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태완선 기획은 29일의 TV대담에서 하반기에 성장률이 상당히 둔화될 것이나 연간 성장률은 10%선을 유지할 것이기 때문에 하반기에도 총수요억제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는데 만일 정책의 기본방향이 이미 그렇게 설정된 것이라면 업계는 불황문제를 금융완화로 견뎌낼 생각을 아예 버려야 할 것이다.
한편 한국개발연구원의 추정에 따르면 올해 도매물가상승률이 42%에 이를 것이라고 하는데 종래의 물가상승률에 따라서 물가정세를 판단한다면 총수요억제책은 불가피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물량기준으로 본 수출증가율이 매우 둔화되어 재고가 누적되어 감으로써 자금순환이 막히고 있는 이 시점에서 총수요억제로 내수가 억압되어 간다면 경기국면은 더욱 악화되어 부도와 도산이 속출할 것임을 부인해서는 안될 것이다. 기업으로서는 물가상승의 폐해보다 부도와 도산, 그리고 실업의 증가가 파생시키는 부담은 더욱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당장 내수를 자극할 수 없는 조건들이 허다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가공무역형의 경제체질에서 수출을 타개하지 않고 내수를 자극한다면 국제수지 역조 폭의 확대를 가속시켜 정면으로 뚫기 어려운 외환상의 벽에 부닥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수출 난을 타개할 수 없으면서 내수를 자극해서도 아니 된 다는데 한국경제의 본질적인 애로가 있는 것이라면 당면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길도 결국은 불황을 끈질기게 견뎌내든지, 아니면 수출「드라이브」를 위한 새로운 조치를 강구하든지 택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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