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큰사전' 4년 만에 물꼬 … 남북, 이달 만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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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2009년 10월 개성에서 열린 겨레말큰사전 남·북 공동편찬위원회 회의 장면.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중단됐던 이 공동회의가 4년 만에 재개될 전망이다. [사진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겨레말큰사전’ 편찬을 위한 남·북한 공동회의가 4년 만에 재개될 전망이다. 남·북 양측 관계자가 지난해 11월 20일 중국 선양(瀋陽)에서 실무접촉을 갖고 올해 2월 중·하순 다시 열기로 합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구체적인 날짜·장소의 확정에 관해 북측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겨레말큰사전 작업은 2005년 초 시작됐다. 남·북한 언어의 이질화가 심해지는 현상을 막아보자는 움직임이었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중단됐다. 2009년 12월 20차 모임이 마지막 공동회의였다.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이사장 고은) 한용운 편찬실장은 “지난해 11월 선양 실무접촉에서 2월 셋째 혹은 넷째 주에 남북 공동편찬위원회 회의를 열자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 실무접촉에는 남측 대표로 한 실장과 공동편찬위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는 소설가 정도상씨 등이 참석했다. 북측에서는 민족화해협의회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한 실장은 “중국에서의 합의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2월 18∼28일 공동회의를 열자’는 내용의 팩스를 보냈고, 북측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도상씨는 “지난해 말 합의한 대로 2월 중·하순에 공동 편찬회의를 열려면 날짜·장소를 확정하기 위한 실무접촉을 한 번 더 해야 한다. 그 실무접촉을 언제 할지에 대한 북한의 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공동회의 재개 성사 가능성에 대해 정씨는 “지난해 9월 이산가족 상봉이 무산되는 와중에도 북측이 하겠다고 한 거니까 당연히 열릴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은 1989년 고 문익환 목사가 방북해 김일성 주석에게 제안해 시작됐다. 2005년 2월 남·북 편찬위원들이 금강산에서 결성식을 가졌다. 정부는 2013년까지 250억원을 투입했다.

 겨레말큰사전은 남한의 『표준국어대사전』,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서 뽑은 28만5000단어와 새 어휘 10만 단어를 합한 총 38만 개의 단어 중 남한의 ‘대남 공작’, 북한의 ‘어버이수령’ 같이 양측이 합의할 수 없는 5만 단어를 뺀 33만 단어를 올림어(표제어)로 하는 일종의 ‘통일 사전’이다. 그러려면 먼저 남·북이 각 단어의 뜻풀이에 동의해야 한다.

 공동회의는 남·북 학자들이 모여 서로의 단어 뜻풀이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다. 공동회의가 끊긴 이후 남한은 독자적으로 12만 단어에 대한 뜻풀이를 해왔다. 북한의 집필 상황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정씨는 “공동회의 개최에 합의한 것을 보면 북한도 뜻풀이 작업을 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재개될 공동회의 참가 인원과 장소에 대해 정씨는 “30∼40명의 남측 학자들이 참여하며, 열흘 가량 일정으로 개성공단에서 열리길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편찬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고은 시인은 “모국어, 겨레말은 남·북한이 기꺼이 합의할 수 있는 일종의 축복이다. 공동회의가 다시 재개된다고 하니 반갑기 그지 없다”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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