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섣부른 의학상식은 오히려 해롭다|이수익<연세대의대 신경과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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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어떤 사람이 도서관에 가서 가정의학대전(가정의학대전)을 읽기 시작했다. 차차 읽어 가는 동안 그는 불안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자기 자신이 그 책에 씌어 있는 많은 병의 증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이 된 것이다. 급기야 그는 친한 친구 중에서 유명한 의사에게 찾아가서 자기자신을 의학연구에 써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자신이 많은 병을 갖고 있으므로 자기만 있으면 많은 병을 동시에 연구할 수 있는 재료가 되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위 이야기는 중학교 영어 책에 나와 있다. 환자들을 진찰하다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위와 같은 예를 종종 본다. 외과대학에 다니는 동안 많은 학생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외과대학생증후군(의과대학생증후군)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즉 여러 가지 병에 대해서 강의를 듣고 공부하는 동안 자기자신이 그중 어떤 병에 걸려 있지 않나 생각하고 불안해하는 것이다. 또 심할 경우에는 선배의사에게 가서 진찰을 청하게 된다.
또는 요즘 신문에 나와 있는 의학기사를 보고 자신이 그러한 병에 걸려 있지 않나 근심하는 예도 많다.
이러한 일들은 의학에 관한 지식이 없거나 불완전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자기 몸에 나타나는 현상을 나름대로 해석하려 들 때 생기는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뱃가죽이 얇은 사람이 우연한 기회에 뱃속에 있는 복대 동맥의 박동을 짚어 보고 겁에 질려 병원에 오는 일이 더러 있다. 『손바닥만한 것이 펄떡펄떡 뛰고 있다』고-.
우리는 단편적이거나 불완전한 지식으로 자기 몸에 일어나는 현상을 해석함으로써 겁에 질리거나 「노이로제」에 걸리지 말고 의심이 있으면 전문적 지식을 가진 의사와 빨리 상의를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이다. 자기가 중병이라고 크게 근심하던 현상이 알고 보면 정상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리적 현장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또 그러한 사실이 확인될 때 자신이 생각하던 중병은 금 시에 없어지는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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