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대신 대입 매달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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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 1월 실업계 고등학교인 논산공고를 졸업한 金종민(20.한밭대1)씨는 중소기업 네곳에 대한 취업이 확정된 상태에서 진학으로 진로를 바꿨다. 곧바로 취업할 경우 대졸자에 비해 급여가 크게 떨어지는 데다 사회적으로도 반듯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실업고 학생들이 취업보다 대학을 크게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 직업인을 양성한다는 실업고의 설립 취지가 무색할 지경이다.

부산시 금정구 대진정보통신고는 올해 졸업생 4백50여명 가운데 86%인 3백85명이 대학에 진학했다. 이 학교 김길용 교장은 "학생들은 물론이고 학부모 대부분이 진학을 원해 어쩔 수 없이 대입 위주의 수업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대구시 수성구 영남공고는 올해 졸업한 7백여명 중 6백여명이 진학했다. 3백9명은 4년제 대학에, 2백94명은 2년제 대학에 합격했다. 나영택 교감은 "대구지역 웬만한 인문계 고교에 못지 않은 합격률"이라고 자랑했다.

올해 대전 시내 실업계 고교 졸업생의 진학률이 59%를 기록, 최초로 취업률(38.7%)을 앞질렀다. 이는 지난해 진학률(44.1%)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로 실업고생들의 대입 열풍을 뒷받침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2001년 최초로 실업계 고교생의 진학률(49.8%)이 취업률(45.1%)을 넘어섰고, 2002년에는 50%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 졸업생 가운데 80%가 대학에 진학한 청주기계공고의 김연창 교사는 "취업했던 학생들이 뒤늦게 진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면서 "보수나 승진 등에서 고졸자가 불이익을 받는다는 사실을 입사 직후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충북교육위원회가 조사한 결과 2002년 말 현재 중소기업에 입사한 고졸 4년차 직원의 경우 평균 1백50만원의 월급을 받지만, 대기업 대졸 신입사원은 2백70만원 가량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군산상고 이동열 교감은 "고졸자들이 갈 만한 기업이 대부분 3D 업종인 것도 실업계 학생들이 진학을 결정하는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분석했다.

특히 대학 정원이 크게 늘어난 데다 많은 대학들이 동일계(실업계) 학생 특별채용 제도를 시행, 문호가 넓어진 것도 대입 열풍의 한 요인이다.

문제점과 대책=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이 늘면서 실업계 학교들이 교과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특기적성 교육시간 등을 활용해 대입지도를 하고 있다.

부산 해운대 한독경영정보여고 정순택 교장은 "대학 가려는 학생에게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직업교육을 시키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교육부 직업교육정책과 이승표 연구관은 "실업계 고교생의 진학 선호 추세가 갈수록 뚜렷해져 산.학 연계 교육과 현장실습을 강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전문직업인을 양성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충남교육청 유대열 장학사는 "고졸자에 대한 사회적.경제적 처우가 개선되지 않는 한 이같은 추세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전=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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