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식「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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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닉슨」미대통령은 매우 승부에 강한「포커」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아무리 져나가다가도 마지막 한판에 판돈을 쓸어모으기를 잘한다는 것이다.
「포커」에서나 마찬가지로 정치에 있어서도 마지막 한판이 가장 중요하다. 이래서 마지막 한판에「포커」꾼 이나 정치가는 곧잘 모든 것을 건다.
「닉슨」도 자기의 대통령자리를 건 마지막 한판을 위해 「워터게이트」관계「테이프」사본을 공개하였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도박은 패배의 색이 짙은 것만 같다. 그의 사임을 요구하는 소리는 오히려 더욱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가고 있는 것이다.
사본은 무려 1천2백54「페이지」에 총 15만 어에 이르는 방대한 것. 꼭「톨스토이」의 거작『전쟁과 평화』의 절반이나 되는 부피다. 판돈이 너무 크면 심리적으로 상대방이 눌리기 쉽다. 그런 것을「닉슨」은 노린 모양이었다. 사본 자체의 인기는 대단하다.「페이퍼·백」으로 내놓은 두 출판사는 초판에 60만부 이상씩 찍어냈는데 벌써 재판이 나오는 중이라 한다.
독자의 흥미를 그만큼 끌게 하는 것은「닉슨」의 결백 여부가 아니라 그보다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대통령이라면 미국 민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닉슨」도 예외는 아니다. 언제나 근엄하고, 정직하고 결단력이 있는…이런 이미지를 그는 지녀왔다.
그러나 이 사본을 통해 부각된 그는 입에 못 담을 쌍소리를 함부로 하고,『아무도 우리의 친구일수는 없다』고 말할 만큼 시의에 차있고, 우유부단하고 언제나 책임전가에 급급한 졸장부였다.
이 보다 더 독자들을 놀라게 하는 사실이 있다. 백악관의 대통령집무실「오벌·룸」은 미국 민이 가장 존경하는 장소다. 권력만이 아니라 법과 도의까지도 상징하는 곳이다.
「트루먼」은 이 방안에 늘 자기 돈으로 산 7「센트」우표 책을 놓고 있었다. 사신에 붙이기 위해서였다. 「쿠바」침공작전의 책임을「소렌슨」보좌관이「아이젠하워」정권에 돌리려 하자「케네디」대통령은 그를 일갈했다. 그런 방에서「닉슨」은 몇 젊은 참모들과 함께 범죄행위를 의논한 것이다. 미국 민이 실망 혹은 분노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닉슨」은「워터게이트」사건에 처음부터 가담했다는 증거만 없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오산이 아니다. 도덕적 판단력이 그만큼 마비된 것이다.
『잇 이즈 롱』(It is wrong)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어느 윤리적 정사가 아니라 방법론적 정오의 판단을 뜻했을 뿐이다.「닉슨」은「블러프」(bluff)의 명수였다고도 한다. 그렇지만 그는 지금 전혀「블러프」가 통하지 않는 문제에 부닥쳐 있는 것이다.
이제 미 하원사법위원회는 한 부도덕한 대통령을 계속 가질 때의 고통과 그를 탄핵할 때의 충격파와 어느 쪽이 더 큰지를 판가름하는 것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것을「닉슨」자신이 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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