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악의 세계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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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근년에 이르러 전통 예술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높아 가고 있고, 특히 젊은 세대가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새로운 문화 창조를 위해 건전한 징후로 보여진다. 음악의 경우 수 개 대학에 국악과가 설치되었고 현대 작곡가들의 대부분이 국악기와 국악적인 어법을 파고들고 있으며 젊은이들이 소극장에 모여 판소리를 감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악 중 아악은 극히 난해하여 일반의 애호를 받기에 아직도 요원한 부문이다. 아악을 참으로 이해하기 위하여는 그 난해성이 당연하다는 마음가짐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다른 예술과는 달리 음악은 그 소재가 악음이라는 비현실적인 추상화된 것이다.
문학의 언어나 미술의 색채는 원칙적으로 현실 세계에 있는 것들이지만 악기의 음은 현실에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악음으로 구성된 음악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근거는 이러한 악음에서 우리가 현실적인 체험을 통하여 얻은 심리적인 암시를 받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음악을 듣고 빠르다고 심리적으로 느끼는 것은 그 리듬의 템포가 우리의 심장의 고동 속도보다 빠르므로 심리적인 긴박감을 암시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악의 구성 양식이 현실 세계에서 비롯되는 심리 현상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것일수록 그 음악은 쉽게 이해되며 그 대표적인 것이 대중 음악이나 민요 같은 것이다.
그러나 고도로 발달한 예술 음악들은 현실적인 심리 현상을 넘어선 고차원의 음향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의식과 감정의 심연에 달하고자 한다. 마치 동일한 언어의 의미가 묘사 중의 산문에서는 쉽게 이해되나 일상적인 의미를 넘어선 시적인 귀절에서는 난해하게 되는 것과 흡사하다. 아악은 인간의 희로애락의 정감을 직접적으로 일으키기 위한 음향의 구성은 피한다. 드높은 정신의 화평을 추구하는 고차원의 음향 세계를 쫓는 것이다. 이른바 「정대 화평」을 이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처럼 정대 화평이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권위에 찬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아악은 자연스럽게 흐르는 서민적인 정감이 고대 중국의 우주론적인 아정한 경지에까지 승화된 것이다. 여기에 아악의 세계성이 있는 것이며 해외 공연에서 아악이 국제적 평가를 받는 것이 의외로 울 바가 없는 것이다.
국립극장 소극장에서는 앞으로 월2회 아악 연주회를 가지리라고 한다. 아악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는 요즈음 반가운 뉴스다. 아악이 난해하다고 하나 많이 들어서 그 음을 따라갈 수 있게 되면 누구나 좋아하게 되고 들을수록 좋아지는 것이 아악인 것이다. 우리의 아악만큼 인간의 마음을 조용히 기쁘게 해주는 음악은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 【황병기 (이화여대 교수·국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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