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인으로서의 학자와 교육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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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현대의 학문은 고도로 분화되고 전문화되어 그 영역이 매우 광범위하다. 그리고 교육의 목적은 인간에게 자기가 소속된 사회의 기본 가치와 규범 및 지식과 기술을 가르쳐서 앞으로 기대되는 사회적 역할을 잘 수행 할 수 있는 훌륭한 국민을 길러내는데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학문과 교육은 짧은 기간에 큰 성과를 기대하기가 어렵고 국가의 백년대계에 해당하는 과업인 것이다. 이러한 과업을 수행하는 사람이 바로 직업인으로서의 학자와 교육자이며 그들의 사명은 여러 분야에서 앞으로 그 나라의 주인공이 될 다음 세대를 성실하게 키우는데 필요한 밑거름과도 같은 것이다.
직업으로서의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은 유치원을 비롯해서 국민학교, 중·고등학교와 대학에 이르기까지 각종의 정규 교육 기관이나 다른 훈련 및 연구 기관에 상당히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직업으로서의 학문에 종사하는 사람의 수도 교육자의 범주에 비하면 적지만 꽤 많은 편이다.
특히 대학 교수는 직업으로서의 학문과 교육의 사명을 어느 정도 둘 다 겸해서 가졌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 두가지의 사명을 다같이 잘 수행해 나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성싶다. 어떤 교수는 다른 학자들이 이룩해 놓은 연구 결과를 학생들에게 잘 가르치는 반면에 독자적인 학문의 업적을 내지 못하는가 하면 또 다른 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석학이요, 독창적인 이론의 개척자인 반면에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고 지도 육성하는 일에는 성의가 없고 관심도 별로 갖지 않는 경우가 있다. 대학 교수로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그 두가지를 겸비하는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어느 학문 분야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대 석학이 나오기란 한 세기를 통해서 몇명 안되는 것이 사실이며 그런 석학이라면 굳이 강단에서 직접 소수의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거나 논문 지도를 하지 않더라도 자기의 연구 결과에 대한 논문과 저서를 통해 간접적으로 많은 학생들에게 학문의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의 저서와 논문은 몇 세기가 지나더라도 거듭 읽히고 가치 있는 교시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기의 석학도 아닌 교수가 한번 출판되었다가는 오래 못 가서 거듭 읽히지 앓는 몇 편의 논문과 저서를 펴낸답시고 제자를 가르치고 지도 육성하는 일에 등한 한다면, 그는 확실히 이기적인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보다 더 어리석고 무능한 교수는 그 나마의 논문도 한편 못 내면서 가르치는 일에도 성의가 없는 사람일 것이다.
대 석학이 아니라도 좋다. 조그만 학자로서 자기의 학문에 성실하게 매진하고 정성을 다해 후배를 가르치고 지도해서 그 학문의 기초를 마련해 준다면 자기가 못 다한 학문의 발전을 다음 세대에는 이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러한 학자와 교육자의 자세야 말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이다.
한상복 <서울대 문리대·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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