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대통령 黨 떠나라" 폭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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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특검 후유증이 심각한 수준이다. 대북 송금 특검법에 대해 '조건부 거부권'을 당론으로 밀어붙였던 의원들은 14일 '원안 통과'라는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온 이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분위기는 당무회의가 열린 17일에도 변하지 않았다.

두시간 동안 계속된 회의에서 청와대와 신주류 지도부에 대한 의원들의 불만이 줄을 이었고, 의원들의 고성이 문 밖으로까지 새어나왔다. 마치 성토대회를 방불케 했다. 동교동계를 비롯한 구주류는 물론 신주류 소장파 의원들도 비난에 가세했다. 이날 회의의 주요 안건인 당 개혁안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대통령은 민주당적을 버려야"=가장 먼저 발언에 나선 정오규(鄭吾奎.부산 서구)위원은 "소수정권으로서 국정운영에 한계가 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며 "노무현 대통령은 정파를 초월한 국정 운영을 위해 내년 총선까지 당적을 이탈해야 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비록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서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공식석상에서 대통령에게 "당을 떠나라"고 거침없이 말할 정도로 분위기는 흉흉했다.

이어 김성호(金成鎬)의원이 "햇볕정책은 자민련과 결별하면서까지 지켜왔는데, 이번 사태로 당의 정체성이 심각히 훼손됐다"며 "당론을 관철하지 못한 대표와 사무총장.원내총무는 즉각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동교동계의 수장격인 한화갑(韓和甲)고문도 "이래서야 앞으로 여당 구실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며 "이번 일로 우리 당과 전통적인 지지자, 일반 국민과의 관계가 한꺼번에 무너져내렸다"고 탄식했다.

이훈평(李訓平)의원은 "허탈하다. 당 지지자들이 모두 떠나고 있다"고 했고, 김태랑(金太郞)최고위원은 "당론을 관철하지 못한 지도부에 책임이 있으며, 협상창구도 분산돼 혼란만 가중시켰다"고 비난했다.

신주류인 이해찬(李海瓚)의원은 "거부권은 행사했어야 했다"며 "막판에 총장이 가세해 혼란만 가중됐다"고 같은 신주류인 이상수(李相洙)사무총장을 비난하기도 했다.

"수정 협상도 제대로 될지 의문"=이호웅(李浩雄)의원은 "이미 공포된 뒤여서 한나라당이 수정 협상에 제대로 응할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이협(李協)최고위원 등이 "조속히 당을 수습하고 재협상에 나서자"며 분위기를 추슬렀지만 성토는 회의가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민주당은 19일 의원총회, 19.21일 당무회의를 잇따라 열어 당의 결속을 다질 계획이다. 또 이날 표출된 의원들의 불만을 청와대에 가감없이 전달키로 했다. 하지만 신.구주류를 막론하고 의원들의 불만이 워낙 거세 특검법 원안 통과의 여진(餘震)은 상당기간 계속될 전망이다.
박신홍 기자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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