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아마존(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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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나의 일생, 아니 3세(전세·현세·내세)의 이상향이기도 한 「아마존」비경을 정작 여행하게 되니 가슴이 설렌다. 옛날과 달리 많이 개척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맨주먹으로 대결하는 나에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동화력 강한 원시태양>
나는 계획했던 대로 적도에 가로놓여있는 「아마존」강 유역을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가면서 더듬어보기 위하여 「브라질」의 가장 윗 부분이며 서쪽에 있는 상류로 갔다.
이 「아마존」강은 본류가 6천2백㎞이며 수많은 지류가 합쳐져서 적도직하에 큰 삼각주를 이루며 대서양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길이는 세계 제3위이지만 수량과 넓은 유역은 세계 제일로서 그 넓이는 전 「유럽」땅의 3분의 2에 가깝다. 남미대륙이 삼각형 모양으로서 강수는 윗 부분의 거의 중간을 차지하는 「아마존」평원에 모이기 때문에 길이 1천㎞가 넘는 지류만 하더라도 약20이나 된다.
본지류는 대서양의 습기와 서쪽의 「안데스」산맥으로 말미암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다우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매우 느린 경사로 흐르고 있다.
본류는 바다에서 3천2백㎞ 떨어져 있는 곳도 겨우 해발2백m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수량이 풍부한 이 강은 거의 평탄한 평원 위를 사행으로 꼬불꼬불하게 흐른다.
따라서 이 평원의 대부분은 열대식의 「정글」로서 「셀바스」식 열대밀림평원이라고 하는데 지역이 워낙 넓어서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질은 녹색 숲의 끝없는 연결이라 이곳은 이른바 「숲의 바다」라 할수 있다. 이 광대한 「정글」을 「아마존」이 끝없이 뱀처럼 꾸불꾸불 흐르고 있으니 「가나안」이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이라면 이 지대는 「물과 숲의 지옥」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어울리는 표현일는지도 모른다.
우주시대라고는 하지만 원시시대나 조금도 다름없는 이 「아마존」강을 더듬어보기 위하여 우선 이 나라 서쪽 상류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나는 여기에 오자마자 먼저 이 적도를 비추고 있는 태양에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태양이란 초시대적인 빛(광)의 근원이지만 「아마존」상공에 뜬 태양은 원초적인 모습이었다. 아니, 「카오스」(혼돈)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하여 처음 만들어진 무구한 처녀태양이었다. 이글이글 불타는 그 뜨거운 열은 고스란히 남신인 「아폴로」(태양신)가 아니며 전지전능의 「주피터」를 낳았으리라고 생각되는 대여신의 입김이랄까. 태고적의 숲의 향기 속에 비치는 「아마존」의 햇빛은 너무나도 신선했다.
나는 첫 인상으로서 「아마존」을 「숲과 물의 지옥」이라고 추상적으로 보았던 것을 후회하려고 한다. 물론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이런 말을 붙여도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작열하는 백색 태양 빛과 강렬한 녹색밀림의 이중주는 고스란히 자주적인 생명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나는 현대인이라는 의식을 잊어 버리고 어느새 원시시대에 사는 원시인으로 완전히 둔갑하여 이 자연 속을 거닐고 있다. 이 「아마존」의 동화력이 이처럼 강하다는 것을 미처 몰랐었다. 「장·자크·루소」는 그의 교육소설「에밀」속에서 자연만이 우리의 스승이라고 말했는데, 그가 이 「아마존」을 보았더라면 좀더 그의 자연사상이 강렬해지지 않았을까.

<날카로운 「인디오」족>
「아마존」의 정밀한 지도를 갖고 있어서 어디에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지만 실지와는 다르기 때문에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이 상류에는 날카로운 「인디오」(인디언)들이 산다고 알고 있는데 이들을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 할까 하는 것이 걱정이었다.
오솔길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숲가의 작은 길을 걷고 있는데 저만큼 어떤 사람들이 보였다. 혹시 「인디오」들이 아닐까. 저쪽에서 먼저 알아차리기 전에 내가 먼저 빠른 걸음으로 그들 앞으로 달려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내가 도리어 반겼다. 그들은 웬 낯선 놈이 여기까지 왔나 하며 의심스러워하는 눈치였으나 내가 웃는 낯으로 대하니까 자기들을 해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그들도 누르스께한 얼굴에 웃음을 띠기 시작했다.

<서로 자기 집으로 끌어>
이때 나는 되도록 미소를 과장 확대해 보이려고 인위적으로 입이 째지도록 소리 없는 웃음을 짓도록 힘썼다.
내가 세계를 쏘다니는 여행가라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 「룩색」을 끌러서 물적 증거를 보여주었더니 비로소 나를 완전히 믿고 반기면서 서로 자기 집으로 가자고 끌어당겼다.
말은 전혀 통하지 않았으나 나의 동양적인 어진 미소하나가 「에스페란토」구실을 한 셈이다. 그러나 나는 큰 고통을 느꼈다. 서로들 자기 집으로 가자고 내 사지를 잡아당기는데 찢어질 만큼 아프기 때문이다. 이때 문득 머리를 스친 것은 「솔로몬」의 재판이었다.
이렇듯 강렬한 이웃사랑이 곧 이 「아마존」에 사는 원주민들의 사랑의 생리였다. 아무런 이해타산도 없이 낯선 사람을 반기는 이 지상의 가장 큰 박애! 이것이 내가 맨 먼저 받은 「아마존」여행의 은총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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