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세 섬주민 처방 받고 “편해유” 무조건 약 요구엔 의사들 “난감”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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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뒷골이 당겨서 죽겠어.”

16일 오전 충남 보령시 오천면 효자도(孝子島) 진료소. 10㎡(3평) 남짓한 진료소를 찾은 신윤우(81) 할아버지가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임은경(39·여) 진료소장은 우선 신 할아버지의 체온과 혈압을 쟀다. 피를 뽑아 콜레스테롤 수치도 확인했다. 신 할아버지는 만성 고지혈증과 고혈압을 앓고 있다. 콜레스테롤 수치는 정상범위에 들어가는 162㎎/dl. 꼼꼼히 데이터를 기록한 임 소장이 컴퓨터로 원격진료시스템에 접속했다.

“할아버님.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모니터 안에서 보령시 보건소 박지훈(29) 공중보건의가 인사를 건넸다. 박 공보의가 있는 보령시 보건소는 효자도에서 직선거리로 20여㎞. 하지만 효자도 주민들이 찾아가려면 바다를 건너 반나절은 가야 하는 거리다.
“상태는 읽어봤고요. 수치상으로는 이상이 없으세….”

순간 박 공보의의 얼굴이 모니터에서 사라졌다. 연결이 끊긴 거였다. 임 소장은 “자주 있는 일”이라며 시스템을 다시 접속했다. 1분여가 지난 뒤 박 공보의의 얼굴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박 공보의는 “콜레스테롤 수치에 별 이상이 없다”고 신 할아버지를 안심시켰다. 복용해 오던 고지혈증 약도 다시 처방했다.

“약 잘 챙겨 드시고 다음 달에 다시 뵐게요.”

신 할아버지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흘렀다. 신 할아버지는 “육지에 안 나가도 의사선생님을 만날 수 있어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며 만족스러워했다.

대한의사협회가 3월 총파업을 선언하면서 ‘원격의료’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는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와 의료법인 영리자회사 설립을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의사협회는 즉각 반발했다. 의사들은 원격의료가 오진(誤診)의 위험이 클 뿐 아니라, 대형병원들의 수익사업으로 전락해 의료의 공공성이 훼손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는 도서·산간주민과 만성질환자들의 의료서비스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원격의료를 둘러싼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노무현 정부 시절 ‘의료산업 선진화방안’의 일환으로 처음 제기됐다. 이명박 정부 때에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의사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논란 속에서도 지난 10년 동안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전국 30여 곳에서 진행돼 왔다. 면적에 비해 의료기반시설이 부족한 강원도와 섬들이 많은 충남이 가장 오랜 경험을 갖고 있다.

본지는 강원도 춘천과 충남 보령시 섬 지역의 원격의료 현장을 직접 찾아봤다. 현장에서 만난 관계자들은 “원격의료는 가능성과 한계를 모두 갖고 있다”고 했다. 어느 한쪽의 시각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얘기다.

16일 오후 충남 보령시 남포면 보령시 보건소. 원격진료 중이던 박지훈 공보의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눈이 아프니까 뭐든 약을 좀 주세유.”

모니터 너머에 있는 92세 할머니는 눈 주위가 파랗게 변해 있었다. 영상만으로는 정확한 진단이 불가능한 상태. 박 공보의는 “안과 전문의를 만나보셔야 한다”고 설득했지만 환자는 막무가내였다. ‘의사에게 보였으니 뭐라도 처방을 달라’는 거였다. 결국 박 공보의는 안(眼)연고를 처방하고 “이상이 있으면 안과에 가셔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정확한 진단 없이 처방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죠. 원격진료만으로는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불가능합니다.”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해 온 의사들은 원격의료 논란이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고 지적한다. 원격의료를 먼저 도입한 외국에서도 만성질환자의 질병관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진단이나 처방을 놓고 논란을 벌인다는 것이다.

강원도 만성질환 원격관리센터장인 한림대 춘천성심병원 안무업(52) 교수는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만성질환은 어쩌다 한 번 병원에 오는 것보다 원격의료로 꾸준히 변화를 체크해 관리하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며 “정부와 의사협회의 논쟁은 핵심에서 비켜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박성의 인턴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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