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진학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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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나라와 사회가 어지러울 때일수록 인성의 기본과 교학의 본질은 무엇이냐 하는 물음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오는 17일부터 시작되는 올해 전국 각 대학의 입시「시즌」을 앞두고 새삼 이 같은 기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는데도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10일로써 마감될 전기대학 지원상황의 중간집계로 미루어 보건대, 우리나라 학부모들이나 젊은이들은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높은 향학열에 불타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또 기술적인 면에서는 보다 현명(?)한 학교 선택 경향을 나타냈다.
서울대 등 소위 서울의 일류대학에 대한 편중지원 경향이 현저하게 누그러졌고, 사립과 지방대학에도 고루 지원자들이 몰리고 있는 것은 당국이 기대하던 대학 특성화나 대학의 지방분산시책에 서광이 비쳤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과연 이것을 반가운 현상이라고만 할 것인가.
우선 올해 대학진학희망자 19만5천여명 (예비고시응시자)중에서도 11만1천5백여명만이 대학응시의 자적을 부여받았고, 그나마 그중 5만6천3백여명만이 대학진학의 기회를 얻게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 14만여명의 고교졸업생들은 결국 낙방의 실의에 떨게 될 것이 뻔한 일이다. 그리고 보면 올해 다행히 대학진학의 기회를 얻게될 자나 그렇지 못할 자나 할 것 없이 지금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대체 교육의 본질은 무엇이며 무엇 때문의 대학진학인가를 가슴마다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옳지 않겠는가.
도시 교육이란 개인적 입장에서 본다면 사람마다에 구유한 자질과 도덕적 품성을 계발하여 하나의 독립적인 인격을 완성케 하려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또 국가적·사회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교육이란 젊은이들로 하여금 한 나라 한시대가 요구하는 문화기대에 따라 남들과 어울려서 창조적인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평균인적 능력을 기르는 임무를 가졌다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교육이 젊은이들의 이기적인 입신출세의 수단으로 전락한다거나, 그들에게 어떤 특권의식에 사로잡히게 한다거나, 또 아니면 무조건 기성의 것에 맹종안주하고 눈앞의 실리만을 좇는 속물들을 양산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교육이라고는 할 수 없다.
특히 전 우주적인 차원에서 세계사의 진운파 인류문화의 신장에 기여하는 창조적 지성인을 키워야 할 대학교육의 본래적 사명을 상기한다면, 오늘날 우리의 교학풍토 전반과 또 그 중에도 특히 그 정상인 우리의 대학교육실태의 전체「스코프」는 근본적인 재평가가 없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흔히 항간에서 운위되는 대학의 양적 팽창 자체에 대한 비난에는 결코 동조할 수 없다.
우리나라 전체인구수에 대한 대학인구의 비율(1천명당7명)로 보거나, 또는 그 전체학교인구상의 구성비율(1·9%)로 보거나 우리의 그것이 결코 과다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해방후 학생수에 있어 29배, 학교수에 있어9·1배, 교원수에 있어 8배라는, 크게 균형 잃은 팽창을 이룩한 한국의 대학들이 아직도 대학교육의 이념자체를 확고히 정립치 못하고 교학당국자나 학부모나 또 학생 자신들 할 것 없이 대학을 마치 출세를 위한 관문이요, 비교적 싼값으로 취직면허상을 살 수 있는 장소로만 알아 온데 있다.
새해 대학의 진학시기를 앞두고, 정부와 학부모와 지원자 자신들은 함께 이 점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대학이 본질적으로 「유니버설」한 차원에서의 창조적 지성과 절도적 인격을 양성하는 기관이라 한다면, 국가는 처음부터 그 능력이 없는 자에게는 그것 아니고서도 고등교육에의 욕구를 만족시켜줄 기타 교육기회의 제공과 그들의 사회진출을 보장하는 제도를 달리 마련할 의무가 있다. 또 정부는 그와 동시에 우리의 대학을 진정한 대학답게 육성하기 위한 정신적·재정적 지원의 확대에 심기일전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참다운 대학교육진흥의 길이요, 또한 치열한 경쟁에서 탈락하게 될 14만여 청년학도들의 불행을 막는 길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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