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정국…여야당의 새 태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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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화당>「개헌논의」소화 작업에 나서|당의 정치주도에도 한계 있을 수밖에|선거구나 연고 찾아 국민설득 펴기로
무언가 국면의 변화가 있을 것 같은 새해의 정국이다. 막이 내렸다가 올라가면서 장치가 바뀌든지, 아니면 조명이 달라져 분위기라도 바뀔 것 같은 상황이다. 작년의 12·3개각→이른바 대화→개헌논의→개헌론에 대한 경고 등 강파른 정치의 흐름 속에서 여야당은 새로운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개헌논의를 금기하는 여당 측에서는 개헌론에 대한 정면대결을 피해, 현재의 유신 체제 불가침론을 펴는 간접화술을 짜고있다.
공화당이나 유정회는 정치를 주도할 입장이 못되기 때문에 국회의 변화를 위한 방안을 스스로 짜내지 못한다. 그래서 던져진 문제-개헌논의-에 대한 소화작업, 그것도 불씨와의 직접 대결이 아니라 연소를 막는 작업을 우선 맡겠다는 태세다.
이효상 당의장 서리는 『개헌 서명을 추진하는 사람들과의 공개토론을 못할 바 아니나 얘기에 매듭이 지어질 것 같지 않은 얘기는 굳이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국민과 더불어 얘기하고 총화 체제의 힘을 다져야할 것』이라고 했다.
더우기 국회 폐회 후 귀향했던 의원들의 종합된 의견을 참작해 공화당의 활동은 「정치적으로 떠들썩하지 않는 방법」을 택할 것 같다. 그 귀향 보고란, 『개헌이다, 체제다 하는 얘기에 대해 농촌에서는 관심조차 없더라』는 것.
박준규 정책위의장은 지난 연말 의원 총회에서 당의 정치적 역할을 강조했었다. 이 말은 당의 정치적 역할이 지금까지 없었거나 있어도 미흡했었다는 얘기다.
이제 새삼스럽게 정치를 주도한다고 해야 거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유신체제는 정치가 전면에 나서지 않는, 어느 의미에서 탈 정치적 질서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떠들썩하지 않은」새로운 움직임을 모색하는 것도 그러한 소이다.
공화당과 유정회 소속의원들은 이달 중순께부터 선거구에 내려가거나 연고를 찾아 국민들과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미리 마련된 예상 질문서와 그 해답은 정부 시책을 홍보하는 내용도 많지만 정부의 시행착오를 해명하고 유신 체제의 불가피성을 설명,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내용도 들어있다.
공화당이 잡고있는 당 활동 기본 지침에는 ▲여론 외 집약을 통한 새로운 정책개발 ▲국민계도 활동의 적극 전개 ▲지식인의 지지기반 확보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경제불안이 정치적·사회적 불안으로 연결될 가능성에 신경을 쓰고있는 점으로 미루어 생활 경제의 합리화, 정부의 새 경제시책 홍보에도 역점을 둘 것 같다.
공화당이 국민적 기반을 찾아 새로이 움직이겠다는 그 구체적인 계획은 박정희 대통령의 연두 회견이 있은 후에 다듬어질 것이다.

<신민당>유 당수 구상에 구구한 해석|「여지」두고 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인 듯 체제 신임 국민투표 예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국면의 변화를 예측하는 신민당은 여당보다 오히려 착잡하다.
어느 의원은 『국민들 마음속에서 신민당은 이미 야당이 아닌 것 같다』고 자탄했지만 정국의 흐름에 대한 「예진」이나 「처방」에서 확고한 줄기를 잡기 어렵다. 여러 갈래의 해석을 낳게 하는 유진산 당수의 시국담이 더욱 그것을 어렵게 한다.
유 당수의 말은 이런 것들이다.
『개헌이 난국 수습의 방법가운데 하나는 될 수 있을지언정 전부는 아니며 유일한 것도 아니다』
『세론에 영합해서 누가 더 앞장서느냐는 자세를 갖는다면 후퇴만 거듭하게 될 것이다.』 『신민당이 개헌이라는 직선적인 표현을 안 했지만 체제를 고쳐야 한다는 입장은 천명한바 있다.』
『개헌을 요구하는 것은 선명하지만 상대가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더 어려운 국면을 초래할지 모른다.』
『내 개인의 신념은 설득과 이해의 바탕 위에서 순리를 찾자는 것이나, 이제는 순리적인 해결이 불가능하지 않으냐는 생각이 든다』
『금년은 어려운 일이 많을 것이니 모든 당원은 험한 길은 같이 갈 채비를 단단히 하라』
「참된 민주체제의 회복」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면서 개헌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쓰지 않은 유 총재의 심중을 채문식 대변인은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려면 낮은 봉우리부터 올라가야 한다』는 단계적인 전략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는데 이 같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유 당수의 구상에 대해서는 해석이 구구하다.
첫째는 행동적 해석. 유 당수가 지난번 정기 국회 말의 여야 협상 때 잘 안되면 당사에서 농성하는 방법, 거리로 뛰쳐나와 「데모」하는 방법, 각종 집회를 갖는 방법 등 여러 가지 행동방안을 생각했었다는 점을 들어 앞으로 경우에 따라선 행동으로 옮길 뜻을 시사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둘째는 소극적 해석. 유 당수는 제약이 따르는 사태의 악화를 예상해서 「쿠션」을 둔 단계적 「어프로치」를 생각하고 있으리라는 견해다. 모 의원은 이 같은 해석을 발전시켜 박 대통령과 유 총재의 면담이 어느 시기에 마련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 면담의 결과는 기대해 봄직하다고 점치고 있다.
세째는 포석적 해석. 정부가 시국 수습의 한 방도로 유신 체제에 대한 국민 신임 투표(헌법 49조에 의한 중요정책 국민투표 또는 59조에 의한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을 통해) 실시할지도 모른다고 예측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이 같은 상황까지를 유 당수가 고려해 당내의 대오정비를 포함한 고차적인 포석을 하고 있으리라는 해석이다.
유 당수의 진단과 처방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개헌서명 「그룹」과는 일치하지 않는 독자적인 것임에는 틀림없다.
당내 일부에선 개헌 문제에 대해 당이 입장을 명백히 하지 않고 있는 점에 불만이며 8일에 열릴 정무회의에선 이 문제의 논란이 있을 것 같다. 고흥문, 김영삼, 이중재씨 등 비주류계는 개헌 주장은 공식적인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는 한 당이 중대한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개헌을 반대하지 않으면서 개헌론을 앞세우지 않는 유 당수. 당 내외로 몇 개의「음지」를 남겨놓고 정국의 변화에 대응하려는 그 나름의 전략이 있는 것 같아 그 전략의 변전이 주목을 끈다. <허준·이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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