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보다 법의공정 기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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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전시민과 일선군인의 투표권이 보호되고 법원의 공정성이 입증되도록 그 동안 성원해 준 국민과 관계법관의 용기에 충심으로 경의와 감사를 표한다』-.
「2·27」선거에서 48표 차로 낙선했다가 28일 대법원판결로 꼭 10개월만에 당선을 찾은 박병배씨(56)의 첫 소감이다.
당락 번복 판결이 난 다음 소송을 맡았던 이택돈 변호사 사무실 (시내 서소문동 소재)에서 기자와 만난 박씨는 널따란 얼굴에 함박웃음을 띠어 기쁨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 기쁨은 국회의원이 되었다는데 보다는 공정한 법의 심판으로 민권을 찾았다는데 있는 것 같다.
박씨는 「2·27」선거에서 전국 최소 표차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을 때 『나는 낙선한 게 아니다』면서 『석달 안에 당락을 뒤집어 놓을 테니 두고 보라』고 장담했었다.
「석달」이 「열달」로 늦추어지기는 했어도 그의 장담은 들어맞았다.
그러나 박씨는 끈기와 인내로 이끈 소송의결과 당선의 영광을 안자마자 진퇴문제를 꺼냈다. 『세상이 귀찮아 조용히 정계를 물러나는가 했더니 또 부름을 받아 골치가 아프다』면서 『9대 국회에서 민선의원이란 희소가치밖에 가진 것이 없는 나로서 과연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를 보아 임무달성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는 유권자의 동의를 얻어 1년 안에 진퇴문제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선거 소송하는 동안 변호인과 만나는 일 외에는 자택에서 세살짜리 손자와 노는 것이 낙이었다고 말한 박씨는 『부재기위, 부모기정이란 동양 인생관에 따라 바깥정치에는 관심을 안 가졌었다』면서 『우선 미국·구라파 등 해외여행을 해서 우리의 좌표를 제대로 파악할 생각』이라고 계획을 말했다. 「히피」처럼 장발이 유난히 돋보인 박씨는 상대방인 임호씨에 대해서 『국회의원이 인생의 전부가 아닌 만큼 임씨는 새 길을 모색해서 국가민족에 봉사하기 바란다』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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