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송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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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연탄 아궁이에 물을 얹어두고 방에 들어와서 누웠는데 이웃집 살티댁이 밖에서 부산하게 나를 부른다. 아직 날이 밝기 전 이어서 겨울아침 잠을 조금 더 잘까 했는데 우리 암소가 송아지를 낳았다는 것이다. 나는 「스웨터」를 아무렇게나 걸치고 그를 따라 갔다. 나의 암소가 꼭 저를 닮은 얼룩암송아지를 낳은 것이다.
겨울 아침에 김을 무럭무럭 내면서 새끼를 핥고 있는 어미 소. 어린 사슴 같은 우리송아지가 어색하게 서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러니까 3년 전 내가 여고를 졸업한 즉시 이곳 농협에 취직을 했다. 처음 왔을 땐 하늘만 빠끔한 이곳이 옛날의 어느 유배지같이 생각되어서 무척 서글퍼 했으나 차차 있어 보니 주위 인심들이 좋고, 특히 이웃마을 사람들의 흙 냄새나는 인정들에 나도 동화가 되어서 이젠 다른 데를 가라해도 싫어할 심경이다.
부모님들은 나를 귀여운 막내딸이라고 자취할 방이며 양식이랑 심지어 땔나무까지 다 마련해 주시니 얼마 안 되는 나의 월급은 쓰려면 단번에 없어지겠지만 저축을 하려면 그런 대로 여유가 있을 수 있는 나의 환경이다.
나는 나의 잡비를 제하고 한달에 만원씩 저축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이곳에서 하루 근무가 끝나면 찾아가는 곳은 살티댁 집이다.
신 살림을 나와서 내외간에 사는 그는 마을에서 홀치기 잘하기로 이름도 났지만 서글서글한 그의 마음씨에 내가 반했다 할까.
내가 이곳에 부임한지 1년이 되어갈 무렵 살티댁은 나에게 풀밟이할 송아지를 한 마리 사주면 잘 길러 주겠다고 했다.
송아지를 사서 남을 주면 원금은 그대로 두고 훗날 팔 때 이익금은 반분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해관계보다 살티댁의 인간미에 마음이 쏠려서 코를 낀지가 얼마 안 되는 얼룩 암소 한 마리를 샀다. 나의 저금한 돈 9만5천원을 톡 털어서….
그런 소가 3년만에 꼭 저를 닮은 첫 새끼를 낳은 것이다.
나는 너무 나 신비스러운 새 생명의 탄생을 보며 아침해가 훤히 떠오를 때까지 모녀 소 옆을 떠날 줄을 몰랐다. 【여임숙<경북 상주군 금수면 봉두농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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