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 희랍 군원의 중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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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8일 미국 상원외교위원회는 의회승인 없이는「그리스」에 대한 미국의 모든 군사원조를 금지하는 법안을 가결했다. 이 법안은「그리스」가「나토」하의 정치 및 군사책임을 수행하고 있다고 미국이 인정할 때까지「그리스」에 대한 모든 원조를 단절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제안의원의 설명에 의하면 이 법안의 목적은「그리스」에 민주정치 복귀를 종용하는데 있다고 한다.
「그리스」에서는 최근 독재적인「파파도풀로스」정권과 민주주의 추진세력 사이에 격돌이 벌어진 후 정변이 일어났다. 그러나 신 정권 역시 전 정권에 못지 않게 독재정치체제를 강화하여「그리스」의 민주주의를 질식시켜 세계여론의 규탄을 받고 있다.「쿠데타」의 악순환과 군사력을 배경으로 한 국민들의 인권유린 등은「그리스」에 거액의 군·경원을 제공하고, 또 많은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는 미국의 세론을 격분케 했었다. 이번 상원외교위가 취한 조치는 이 세론의 경화를 반영시킨 것이다.
60년대에 있어서 미국의 대외원조 그 중에서도 특히 군사원조는 피원조국의 정부가 반공노선을 걸어가는 것을 조건으로 삼았을 뿐 그 이상 더 나아가 민주주의의 실시를 반드시 요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랬던 것이 60년대 말「닉슨·독트린」이 입안되고 그것이 70년대에 들어 실천적으로 전개되면서부터 미국의 세론은 점차 원조의 제공과 민주주의의 실시를 결합시키기를 요구하게 되었고, 행정부도 이러한 세론의 요구를 무시하기 어렵게 되었다.
동맹국에 대한 원조의 제공과 피원조국에서의 민주주의 실시를 결부시키는 사고방식이 유력해진 소이는 무엇인가. 우리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지 않은가 생각한다. 첫째, 미국의 군·경원이 엉뚱하게도 독재정치를 강화하는데 사용되고 있다는 국내외의 여론을 비등하게 됨으로써 동맹국과 같이「좌익전체주의」인 공산주의를 배격하겠다는 미국 대외군원의 대의명분이 매우 희박해진데 있다.
둘째, 독재정치는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이다. 미국의 원조가 독재정치를 유지 강화하는데 사용된다고 하면, 그 나라, 그 사회는 부패로 만신창이가 되어 결국 내부 붕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세째, 냉전시대가 끝나고 5강 시대에 접어든 오늘의 세계정세에 있어서「공산주의혁명의 수출」은 종전에 비해 훨씬 어렵게 되었다,
그렇다면 미국이 특정 국가나 정부가 단순히 반공을 한다는 이유로 덮어놓고 밀어주어야 할 시기는 이미 지났다는 소리가 높게 된 것이다. 무거운 세계적 책임의 많은 부분을 벗어난 미국은 선택의 여유를 갖게 되었고 민주주의를 널리 살리는 반공국가만을 도와줄 만한 가치 있는 맹방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넷째, 비「스탈린」화의 선풍이 돌기 시작한 이래 많은 공산국가에 있어서 사회체제에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 변화는 분명히 자유화·민주화의 방향을 찾고 있는데 명색이 자유국가라 하면서 인권을 유린하고, 자유를 억압하고 민주주의를 말살한다는 것은 시대 착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세계의 대세에 민감한 미국의 세론은 이 같은 독재국가에 대한 원조의 지속을 명예롭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아테네」로부터의 보도에 의하면「그리스」정부는 미국의 원조중단의 움직임에 자극을 받았음인지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감축시키는 법령을 발효시켰다고 한다. 지난 6월 국민투표에 의해 개정된 헌법은 대통령의 권한을 거의 절대적으로 강화해 주었다. 그러나 이 법령들이 발효한 결과로 대통령은 국방·치안·외무 등 3개 주요분야에 대한 절대적인 관할권을 상실케 됐으며, 2백명의 국회의원 중 20명을 지명 할 수 있던 권한도 없어졌으며, 7년의 대통령 임기는 5년으로 줄어들었으며, 정부와 협의치 않아서는 계엄령을 선포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일련의 조치는 우선「그리스」에서 민주주의를 소생시키는 첫 걸음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조치로써 민주정치복귀 조건부로, 「그리스」에 대한 원조를 주겠다고 하는 미국 의회의 희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인가. 미·「그리스」관계의 변화를 예의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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