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홍보자료만 제공 우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이창동(李滄東) 문화부 장관의 '홍보업무 운영방안'에 이어 국정홍보처가 세종로의 정부청사 5개 기자실 폐지를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로 청사는 총리실.외교통상부.통일부.행정자치부.교육인적자원부의 기자실을 모두 없애고 브리핑실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경제부처가 몰려 있는 과천 종합청사에서도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정부부처의 경우 지금까지의 출입기자제가 사실상 폐지된다.

기자실과 브리핑실의 차이는 브리핑실은 등록만 하면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다는 점. 브리핑실에서 기자들은 각 부처가 정한 시간에 진행하는 브리핑을 듣고, 일문일답을 바탕으로 기사를 쓰게 된다.

반면 기자실의 경우 출입이 허용된 출입기자들만으로 운영되며 통칭 '부스'라고 부르는 책상 한두개 정도의 공간을 언론사별로 배정받고 이곳에 소속 언론사와의 직통전화선 등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청와대 기자실만 보더라도, 중앙기자실의 경우 지금까지 23명의 신문.방송.통신사 기자들이 출입해 왔다. 신문 한명, 방송.통신 두세명씩만 출입기자로 등록해 취재를 해왔던 것. 그러나 브리핑실로 전환될 경우 2백50여명 안팎의 기자들이 청와대에 등록해 브리핑에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자실은 또 공식 발표 외에 각종 정책결정 배경과 뒷얘기가 오가고, 출입기자들과 장.차관 및 정책 당국자들이 의견을 교환하는 장소로도 활용돼 왔다.

브리핑실로 전환되면 이같은 근접취재가 막히고 정부 홍보자료에만 의존하게 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더구나 이창동 문화부 장관이 밝힌 '취재원 실명제'에 따라 다른 부처에서도 기자를 개별적으로 만나 취재에 응한 공무원들이 그 사실을 공보관에게 보고하도록 강제할 경우, 언론은 정부 부처들이 속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 수 없게 된다.

이 같은 조치는 새 정부의 언론 정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이른바 '주류 언론' 즉 발행부수가 많고 규모가 큰 종합일간지의 취재 기득권을 없애고 인터넷 신문 등 '대안 언론'의 정보 접근을 쉽게 만들겠다는 취지로 보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적어도 정부가 공급하는 정보에서는 주류 언론이 이득을 보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뜻이 담긴 것 같다.

그러나 문제점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인터넷 신문을 포함한 군소언론의 난립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며 심지어 청와대와 한두개 정부부처에 등록한 기자가 소속 기자의 전부인 언론도 출현할 것 같다.

최근 수십개로 늘어난 인터넷 신문이 수백개가 되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게 언론학자들의 예측이다. 이는 언론 재정의 열악화와 기자들의 질적 저하로 이어지고 사이비 언론의 폐해를 부를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인터넷신문의 경우 현 정기간행물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있어 정부가 이를 추진하려면 법제도적 정비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수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