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물신약 처방권 논란 갈등은 이제 시작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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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4일 전국 한의사들이 국회 앞에 모여 천연물 신약 정책을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법원에서 한의사의 천연물신약 처방을 제한하는 고시가 무효라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첨예한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천연물신약 판결을 두고 판결 당사자인 식품의약품안전처·한의계는 물론 의료계·제약업계도 예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향후 최종 판결에 따라 천연물신약의 위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천연물신약을 한약제제로 인정하지 않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고시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천연물신약은 본래 한방에서 사용하는 한약·생약을 기초로 해 의약품 형태로 만든 약이다.

이번에 행정법원에서 무효 판결을 받은 식약처 고시는 2012년 5월 개정된 식약처의 '한약(생약)제제 등의 품목허가·신고에 관한 규정'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기존 한약에 알코올 용매 등을 넣어 추출한 후 알약 등의 형태로 만든 제품은 임상시험을 거쳐 천연물신약으로 허가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생약제제에 대해 ‘서양의학적 입장에서 본 천연물제제로서 한의학적 치료목적으로는 사용되지 않는 제제’로 정의해 한의계의 반발을 샀다. 한방 임상경험을 근거로 개발한 것이 천연물신약인데 법적으로는 병·의원 의사만 처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2012년 10월 24일 전국 한의사들이 국회 앞에 모여 천연물 신약 정책을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사실 이번 판결은 천연물신약 개발 후 허가를 어떻게 받느냐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개발 이후 천연물신약 처방권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국내 천연물신약 시장규모는 해마다 크게 성장하고 있다. 녹십자의 ‘신바로’나 동아제약의 ‘스티렌’, SK케미칼의 ‘조인스’ 등이 대표적인 천연물신약이다. 이중 스티렌은 2012년 처방량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식약처 고시는 한의사가 천연물신약을 처방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배제하고 있다”며 “한의사의 한방의료행위를 한정하는 것으로 결국 한의사 면허범위를 제한하고 직업수행 자유가 제한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천연물신약 범위에 한약제제를 제외할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데 한의사 면허범위를 제한하는 고시규정은 위법하다”고 덧붙였다.

한의사의 천연물신약 처방을 제한한 식약청 고시는 사실상 무효라는 의미다. 이에 따라 한의사 역시 의사와 마찬가지로 천연물신약 처방권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렸다. 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식약처 고시가 무효라는 법원의 판결은 그동안 천연물신약 관련 규정이 위법이었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반면 식약처는 조심스런 분위기다. 식약처 관계자는 “판결문을 검토한 후 향후 대응방안을 말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천연물신약 정책과 관련이 있는 만큼 사실상 항소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재 식약처는 판결문 검토와 내부 논의 절차를 진행중이다.

의사협회는 공동처방에 대해 신중한 반응이다. 의사협회 관계자는 “생약제제로 한정한 천연물신약을 한약제제로 포함하라는 것이 한의사의 처방권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다만 이번판결로 처방권이 한의사에게도 인정되면 의사협회 차원에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한의계는 한방의약분업이 실시하지 않고 있다. 만일 한의사에게 천연물신약 처방이 인정되면 한의원에서 전문의약품을 처방한 후 직접 조제할 가능성이 있다. 한의원이 의약분업 예외지역이 되는 셈이다.

제약업계도 난감한 입장이다. 처방권의 의료계에서 한의계로 넓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천연물신약을 두고 의사·한의사 간 갈등이 커 양 쪽의 모두 눈치를 살펴야 한다. 의료계에서 천연물신약을 외면해 오히려 처방이 줄어들 수도 있다. 마케팅 전략 역시 수정이 불가피하다.

천연물신약 개발에도 비상이 걸렸다. 국내 제약업계는 신약 파이프라인의 20%가 천연물신약일 정도로 주력하고 있다. 물론 인체시험 등 허가절차를 받은 천연물신약의 지위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송 과정에서 혼란이 커지면서 천연물신약 개발이 위축될 수 있다. 또 건강보험 적용이나 신약보호 조치 등도 논란이 된다. 식약처 역시 이런 점을 재판과정에서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대체입법을 통해 혼란을 최소화 하면서 천연물신약 외연을 넓힐 수 있다”고 판단했다.

2012년 10월 24일 전국 한의사들이 국회 앞에 모여 천연물 신약 정책을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한편, 이번 소송은 한의계에서 천연물신약이 한약제제의 원리와 성분으로 만들어졌는데 식약처가 천연물신약 명목으로 한의사의 개발 및 처방권을 제한하고 있다며 지난 2012년 12월 12일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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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미 기자 byjun3005@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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