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원 칼럼] 韓·美동맹 무엇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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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미 동맹에 이상이 생긴 것은 명백하다. 정상은 아니다. 문제는 한.미 동맹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한.미 동맹 관계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카터 대통령이 주한 미군을 철수할 뜻을 한국 정부와 아무런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선언했을 때도 한·미 관계에 긴장과 불신이 고조됐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국의 권위주의 정권과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이념 사이에 갈등과 모순이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양국 관계에는 항상 어두운 그림자가 쌓여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 反美감정 없는 사회는 없어

권위주의 시대에 비하면 지금은 한.미 관계를 관리하기가 훨씬 쉬워진 셈이다. 한국과 미국 사이에 기본적인 정체성 문제를 놓고 토론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1970, 80년대의 한.미 관계는 권위주의로부터 보호해야 했다면 90년대 이후의 한.미 관계는 과잉 민주주의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다.

과잉민주주의는 경험을 통해 확인된 절차에 따라 아직 여과되지 않은 각종 집단들의 요구를 정부가 분별없이 그대로 집행하는 그야말로 지나친 민주주의를 뜻하는데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는 집단이익에 대한 인식이 너무 단순하고 일방적인 것이 걱정이다.

이른바 한국 사회의 반미 감정도 이런 현상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일반 국민의 차원에서 보면 한.미 관계에 대해 이런 저런 요구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정치 지도자가 이런 저런 요구에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미 감정이 없는 사회는 없다. 미국이 군사적으로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이고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문제로부터 세계 무역질서 문제에 이르기까지 주도적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인 만큼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있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국민이 흥분했을 때 냉정을 되찾도록 이성(理性)에 호소할 수 있는 지도자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오늘날 어려움에 빠진 동맹 관계는 한.미만이 아니다. 프랑스.독일 등 미국의 전통적 동맹국들이 미국의 대 이라크 정책을 정면으로 공격하면서 미국에 대해 비판적이며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유럽이 반미 방향으로 나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냉전이 종식됐기 때문이다. 동맹은 위협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전제로 한다.

냉전시기에는 동방세력(소련 및 바르샤바 조약국가들)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은 서로를 필요로 했다. 그러니까 유럽은 56년의 수에즈운하 사건 같은 미국의 행동에 대해 마음 속으로는 반미 감정이 뜨겁게 끓어올랐겠지만, 미국이 필요했기 때문에 반미 제스처에는 한계가 있었다.

한.미 동맹도 냉전이 그 배경이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공통된 인식이 양국 관계의 접착제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냉전 종식은 한.미 동맹 관계에도 매우 어려운 문제를 제기한다.

북한의 존재를 어떻게 인식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미국은 북한을 군사위협이라는 관점에서 보는데 한국은 '화합과 협력'의 대상으로만 본다면 한.미 관계에는 문제가 없을 수 없다.

*** 남북 화해라는 개념의 노예

한반도에도 냉전이 종식된 것처럼 생각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반도는 동유럽이 아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에게 북한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다면적일 수밖에 없는 북한이라는 존재를 우리의 단순한 사고 구조에 맞게 단순화한다면 그런 인식은 예상하지 않았던 불행을 가져올 수도 있다.

한.미 동맹 관계는 근본적으로 북한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달려 있다. 탈냉전이라든가 남북의 화해라는 단순한 개념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김경원 <사회과학원 원장.고려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