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터치] 높아진 한국영화 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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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진흥위원회 이건상 해외진흥부장은 이달 초 프랑스 칸영화제로부터 뜻밖의 편지를 받았다. 오는 5월 14일 개막하는 제56회 행사를 앞두고 영화제 관계자가 직접 한국을 방문해 작품을 고를 계획이니 한국에서 볼 영화를 미리 준비해 줬으면 고맙겠다는 내용이었다.

"아니, 콧대 높기로 유명한 칸영화제측이 직접 와서 한국영화를 보겠다고…." 이 부장은 격세지감을 느꼈다. 한국영화를 한 편이라도 더 알리려고 온갖 경로를 동원해 뛰어왔던 그였다.

실제 지난 14일 두 명의 칸영화제 관계자가 찾아왔다. 영화제 주요 부문 중 하나인 감독주간의 프랑수아 다 실바 집행위원장과 아시아 담당 프로그래머 제레미 스게이가 17일까지 나흘간 한국영화를 훑고 간다.

그간 칸영화제와 관계 있는 외국 영화인이 비공식 자격으로 우리 영화계를 둘러본 적은 있었으나 이번처럼 공식 절차를 밟아 방한하긴 처음이다. 그만큼 한국영화를 바라보는 칸영화제 측의 기대가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감독상을 받은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 영향도 컸을 것이다.

이들은 장.단편 합해 열여섯편의 우리 영화를 관람했다. 홍기선 감독의 '선택', 전수일 감독의 '파괴', 이윤택 감독의 '오구', 어일선 감독의 '플라스틱 트리' 등 작품성에 무게가 실린 영화들이다. 현재 제작 중인 작품도 다수 포함됐다. 올 초 칸영화제 경쟁부문 관계자가 개인적으로 방한해 이미 한번 살펴본 영화들이다. 이 부장은 "그만큼 한국영화가 약진한 증거겠지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씁쓸한 구석도 있다. 앞에서 언급된 영화들이 국내 시장에선 별다른 바람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선택' 의 경우 이미 완성을 해놓고도 비전향 장기수란 예민한 소재 때문에 배급망을 잡기가 힘겨운 실정이다. '파괴'도 최근에야 겨우 투자자를 구해 막바지 작업 중이다. 시장성이 빈약하다는 이유에서다.

일본과 대만영화는 한때 아시아를 대표했으나 작가주의 영화와 상업영화 사이의 거리가 벌어지면서 영화계 전체의 활력을 잃어버렸다. 결코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볼 일이 아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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