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자의 양면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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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은행은 30일 중화학공업 입국을 위한 거액의 외자도입이 투자국과의 관계 여하에 따라서는 부의 효과를 나타낼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특히 한은이 다국적기업의 직접투자가 자칫 현지의 자원 고갈을 촉진시키고, 자주 개발 능력을 저해하여 순자본의 누출 같은 부의 효과만을 파생시키기 쉽다는 경고를 발한 것은 이 시점에서 매우 적절한 대목이다.
흔히들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는 편리한 구실을 수용하는 버릇이 있지만, 적어도 외자 문제에 있어서 만은 시행착오가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강력한 세력을 배후에 둔 외자는 한번 잘 못 다루면 이를 시정하지 못하는 것이며, 결국 국내 정책까지도 구속하는 위험이 있다. 이 사실은 우리도 정유 및 비료 분야에서 이미 경험한바 임을 상기할 때 중화학공업 건설에서 이 문제가 특히 신중하게 다뤄져야 할 것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는다.
솔직이 말하여 지난 20년간의 선진국 원조가 후진국의 경제 개발에 기여하기보다는 오히려 의존성을 심화시켰다는 비판이 국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실로 보아 외자도입의 위험성은 지난날 보다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국제적인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오는 77년에 이르면 전체 후진국은 신규 외자 도입액보다도 30%나 많은 원리금 상환을 해야 할 것이며 그 위에 격증하는 과실 송금 압력에 직면할 것이라 한다. 그러므로 전체로 본 후진국은 77년 이후에 외자도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가속적인 외자 의존성의 심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전체적이고도 일반적인 현상이 그대로 특정 국가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외자를 다루는데 있어 그러한 전체적·일반적인 경향을 신중히 참조해야 할 것이라는 데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우리의 경우, 외자가 우리의 장래 경제에 어떻게 영향을 줄 것인지 깊이 연구한 실적은 거의 없다. 수출만 급속히 증가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물량 중심적인 분석이 과연 타당한 것이며, 또 안전한 것이냐를 점검하지 않고 외자, 특히 다국적기업을 다다익선으로 받아들일 때 어떤 문젯점이 제기되는 것이냐를 시급히 구명해야 할 것이다.
이런 뜻에서 한국은행이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을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며 이를 계기로 학계는 물론 정책 당국도 우리의 중화학 계획을 새로운 차원에서 다시 검토하여 보다 국리민복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 주기를 기대한다.
끝으로 근자의 국제 간 자본 이동 경향으로 보아 이른바 원조 개념의 자본은 날이 갈수록 축소되는 반면, 상업적인 자본만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상업 차관이나 직접 투자 등 완전히 상업적 「베이스」로 움직이는 자본만이 활발히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공공 차관 중심으로 외자를 들여온다는 방침은 국제적인 추세와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화학공업 건설에서 한은이 염려하는 성질의 자본은 계획과는 달리 절대적 비중을 차지할 것임을 직시해서 장기 전망과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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