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부설 동서 문제 제3회 학술「세미나」|중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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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모택동의 지배 체제」를 취급한 조재관 교수는 이른바 『가치 체계적 분석 방법』을 사용, 『모택동에 대한 개인적인 충성』을 지배 체제 연구의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채택했다.
조 교수는 중국 공산당사 전체를 『충성』이라는 단일 「버로미터」로 설명하기 위해 「계급적 충성」 「민족적 충성」 「개인적 충성」으로 세분했다.
그리고 창당 초기에서 항일 민족 통일 전선 결성까지는 계급적 충성이, 그 후 45년 종전까지는 민족적 충성이, 45년 이후 52년까지의 과도기에는 3가지 모두가 강조되었다고 주장했다.
또 53∼59년 사이에는 다시 계급적 충성이 강조되어 당 규약 속의「모택동 사상」이라는 말마저 삭제했으나 60년 이후에는 모에 대한 개인적 충성이 압도적으로 강조되었다고 풀이했다.
공산당이라는 이념 집단의 내부 관계를 충성, 더구나 「개인적인 충성」이라는 빙탄의 도구로 가늠하려 했던 조 교수의 이와 같은 주장은 참가자들로부터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조 교수는 문화대혁명마저도 『당적·민족적 충성에 있어서 의심받을 여지가 없는 유소기·임표 일파를 희생시켰다』는 이유로 이를 「개인적 충성」자 때문에 빚어진 단순한 권력투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소기 노선의 경제 주의 내지 임표의 해당 행위가 명백하며, 문혁 때의 군중 노선이 「파리·코뮌」이래 가장 광범한 대중의 신뢰였다』(박동운·한국 일보 논설위원)는 점, 『각국의 공산당이 일응 당내 민주주의의 전통화를 실현해 왔다』(김남식)는 점, 『조교수가 민족적 충성이 강조되었다고 주장한 시기에 중국공산당 당규약은 「모택동 사상」이라는 귀절을 삽입했다』(이인호·고대)는 점등이 연달아 지적되었다.
어쨌든 근년 들어 구미 학계에서 사회 현상 분석의 유력한 수단으로 인정되었던 「가치 체계적 분석 방법」은 분석 대상에 따라 어떤 한계를 갖는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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