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한 공격」으로 변모한 「유엔」 정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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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유엔본부=김영희·장두성 특파원】제 28차 「유엔」총회 한국문제 토론에서 주요관심사의 하나는 미·소·중공 등 강대국사이의 미묘한 삼각관계가 논쟁과정에서 어떤 형태로 노출될 것이냐 하는데 있었다.
남북한의 주요 지지국들이 모두 연설을 끝낸 지금 그들의 연설을 면밀히 검토해 볼 때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미·소·중공 모두가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언어를 사용하느라고 신경을 썼다는 점이다.
이 3개국들은 다같이 한국 문제가 오늘날 「유엔」의 주요문제로 대두되게 한 장본인들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수년간의 「데탕트」로 한국 문제와 같은 지엽적인 문제로 서로간의 감정을 자극하지는 않겠다는 이미 잘 알려진 강대국의 「데탕트」 심리를 또 한번 명백히 했다.
이러한 강대국의 태도는 한국지역에서의 대결을 피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남북한 언어의 대결이 전개되고 있는 현장인 「유엔」에서 볼 때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중공군 개입 비난 없어져>
○…한국군에 참전한 중공의 의용군에 대한 미국대표 「존·스캘리」의 표현, 즉 『한반도는 서로 상충하는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많은 나라 사람들 수만 명이 죽어간 장소이기 때문에 한국문제는 인도적이며 정치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한 것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는 한국 측을 지지한 16개국과 북한측을 지지한 중공을 같은 차원에 놓고 말한 것으로 중공군의 개입에 대한 비난을 한 징조가 전혀 없다.
이는 미국이 전쟁을 했던 적군에 대해 적대감을 표시한 게 아니라 오히려 「키신저」가 모택동과 악수를 나눈 북경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스캘리」는 또 중공대표 황화가 전날의 연설에서 『전 한국 국민』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데 대해 『남북한 대표단을 한자리에 불러놓은 자리에서 도대체 제3자가 어떻게 어느 한쪽만이 전체 국민을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따끔하게 침을 놓았지만 이 때도 그는 황화를 지칭하지 않고 『어제의 한 연사』 라고 만 지적했다.
중공대표 황화도 「스캘리」 못지 않게 『공손한 공격』으로 시종했다. 그는 21분간의 연설에서 6차례나 미국이란 말을 썼으나 『미국 제국주의고』라고 표현한 것은 단 한번 썼다.
한가지 특별한 주의를 끈 발언은 두개의 독일처럼 남북한도 「유엔」에 동시 가입돼야 한다는 한국 측 지지자들 주장을 반박한 것이었다.
황화는 독일 역시 2차대전후 강대국에 의해 분단되었다는 사실은 생략하고, 한국의 경우는 그 분단이 미국의 침략에 의해 생긴 것이기 때문에 독일의 경우와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소련과는 견원지간인 중공이 독일의 통일을 두려워한 소련이 양 독 가입에 주역을 맡았던 사실을 이런 식으로 정당화 한 건 이상하다고 이 곳 「업저버」들은 고개를 갸우뚱.
소련 대표단의 「야콥·말리크」는 중공대표의 연설에 경쟁이나 하는 듯 45분간이나 장광설을 늘어놓았지만 내용은 역시 북한대표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는 정도였다.

<미 기자 핀잔 받은 북한대표>
○…제 1위의 한국문제 토의와 함께 북한의 공보활동이 바싹 강화되고 있다.
북한은 16일 「유엔」 「로비」에서 약 10명의 기자들을 불러 「미니」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 외상의 특별고문이라는 전인철이 김 장관의 연설을 조목조목 따지며 거짓말이라고 비난했다.
전의 회견은 「유엔」 기자단 부단장인 「로스앤젤레스·타임스」지 기자로부터『시간이 없으니 좀 간단히 해달라』는 부탁을 두 번이나 받고 질의응답으로 넘어갔다.
기자들은 『평화 공존에 반대하면서 어떻게 연방제를 주장하는가』 『북한 사회주의의 완전승리가 어떻게 연방제와 양립할 수 있는가』 『주한 「유엔」 군사에 대한 대체안을 수락할 것인가』 『한국의 대화재개 제의를 받아들일 예정인가』 등등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전의 답변은 평화공존은 서로 다른 사회체제를 가진 나라간의 이야기이지, 같은 민족간에는 해당되지 않고, 북한이 말하는 연방제는 다른 나라의 것과는 다른 것이며, 남북대화는 한국이 조절위를 개편하면 언제든지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어정쩡하게 대답하고 넘어갔다.
전의 말을 김충걸이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면서 영어로 통역.

<좌석배정 불만 많은 북한>
○…북한대포는 좌석 배정에 대해 불만이 많다. 그들은 한국대표와 멀찌감치 떨어져 앉겠다고 사무국에 요청한 결과 의장석을 향해 왼쪽, 한국은 맞은쪽에 자리잡았다.
이종목은 「리비아」를 비롯한 5개 국가대표와 나란히 앉았지만 그의 뒤에는 의자가 두 개 밖에 없어 권민준과 통역 외의 다른 대표들은 3m가량 떨어진 자리에 따로 앉게 되어있다.
한국대표단은 수석을 비롯한 6명의 대표가 앞줄에 함께 나란히 앉고 바로 뒤에 다른 대표들이 배석하고 있다. 뿐 만 아니라 북한대표들은 자기네 자리까지 가려면 우리 대표단의 시선을 등뒤로 느끼면서 바로 옆을 통과해야 하는 『고통』을 안고있다.
그래서 사무국에 불평했다지만 우리대표단과 떨어진 자리를 달라고 자청한 탓으로 불편한 자리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

<조절위의 구면끼리 상봉도>
○…「유엔」총회에선 이미 구면인 남북한 대표들이 묘한 해후를 하는 인연도 있었다.
한국 측 자문위원인 이동복씨와 북한 「유엔」 대표부 차석인 이윤겸은 남북조절위에서 이미 인사를 나눈 사이.
남북 조절위 회의 때 녹음사로 일했던 이윤겸을 이동복 대표가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자, 예전 신분이 알려진 이윤겸은 무척 당황했는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얼른 「리시버」를 귀에 꽂고 연설을 듣는 체 했다.
북경에서 미·중공간에 한국문제에 대한 협상이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끈질기게 나돈 16일 상오 정치위원회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대표 「자밀·바루디」가 한국문제에 관한 두 개의 결의안에 대해 수정안을 내놓았다.
「바루디」 대표는 수정안의 내용이『강대국들이 한반도의 내정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전체적인 한국민」의 주권을 존중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이 수정안을 다시 수정하여 제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대부분 「유엔」·「업저버」들은 「바루디」 대표의 제3안을 대수롭지 않게 보고있으며 한 기자는 『「바루디」 대표가 또 한번 농담을 하고있다』 고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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