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빵집 이름이 … 미로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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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호 31면

지난달 고향 캐나다 토론토에 다녀왔는데 새로 문을 연 동네 빵집 이름이 ‘미로틱(Mirotic)’이었다. 스페인 농구 선수 이름이 아니라 동방신기의 노래 제목을 딴 이름이란다.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세계를 제패한 지 18개월 지났다. ‘강남 스타일’은 누구도 쉽사리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K팝을 세계에 알렸다. 나처럼 K팝 관련 일을 하는 사람으로선 당연히 굉장한 일이었다.

과거엔 내가 “K팝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라고 자기소개를 하면 대부분은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일부 광팬을 제외하고 K팝은 별 의미를 갖지 못했다. 그러다 등장한 게 싸이였다.

내게 싸이는 차별화된 가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K팝에 대해 기사·책을 써달라거나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은 급격히 늘었다. 사람들은 내게 “싸이랑 친구세요?”라고 묻곤 했다. “아니다”라고 대답하면 그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지난해는 K팝에 있어서 유별난 해였다. 싸이의 ‘젠틀맨’이 유튜브에서 6억 번의 클릭을 기록하며 사상 일곱 번째로 인기 많은 뮤직비디오로 등극했지만 이상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젠틀맨’을 실망스러워했다. 판매고에 따르면 ‘강남 스타일’이 ‘젠틀맨’을 눌렀다. 지난해에도 그랬다. ‘강남 스타일’과 ‘젠틀맨’(2위)에 이어 빅뱅의 ‘판타스틱 베이비’는 2012년 노래인데도 3위를 했다. G드래곤의 ‘쿠데타’ 앨범은 빌보드 선정 앨범 차트 200선에 들어갔지만 순위는 182위에 그쳤다. 그러나 G드래곤은 그해의 월드 아티스트 앨범 부문에선 9위를 차지했고.

여기에서의 문제점. 올해 팝 음악계의 인기를 대변할 마땅한 단어가 없다는 거다. 유튜브 클릭 수는 많은데 앨범은 잘 안 팔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수백만 명의 팬이 관객석을 꽉 채우는 콘서트는 열 수 있지만 차트 상위 랭크는 안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표현할 법이 마땅치 않다는 얘기다.

이는 곧 2014년의 팝 음악 비평에 있어서 새로운 문법과 어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엘비스 프레슬리부터 저스틴 팀버레이크까지 통했던 게 이젠 통하지 않는다.

K팝이 음악적으로 상당한 성장을 이뤘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선 대부분의 곡이 음정이 풍부하고 조화롭다. 약 10년 전 한국 가요를 다시 들어보면 어찌나 밋밋한지 놀라울 정도다. 음악학 연구가(musicologist)인 내 친구는 “예전의 K팝 제작자들은 동요처럼 가요를 만들어서 귀엽고 유치한 곡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고 굳게 믿는다. 난 그게 어느 정도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날 K팝이 더 성숙해지고 화려하게 변했다는 점에는 확고한 기쁨을 느낀다.

대부분의 다른 한국 문화 장르도 그렇듯이, 세계의 다양한 문화요소와 섞이면 섞일수록 K팝은 더 강력해질 것이다. 세계 일류와 경쟁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더 훌륭한 결과를 낳는 길임은 틀림없다.

개인적으로 2013년은 좋은 곡이 가득했던 해로 기억한다. SM엔터테인먼트의 헨리 라우라는 작곡가는 매우 훌륭한 자질을 갖고 있으며 그의 ‘1-4-3’ 작곡 공식은 놀라울 정도로 귀에 쏙쏙 들어온다. 제이 박은 꾸준히 좋은 곡을 내놓는다. 2PM의 훌륭한 노래 ‘A.D.T.O.Y’가 차트에서 선전하지 못한 건 너무도 원통한 일이다. 스피카 역시 중독성 있는 멜로디에다 멤버들의 탄탄한 목소리가 훌륭했고, 에일리 역시 굉장한 목소리를 선보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지난해 최고의 K팝 노래는 씨엘의 ‘Baddest Female’이었다. 이런 종류의 노래는 출시 당시엔 무시되지만 이후 4~5년이 지나면 콘서트에서 팬들이 가장 큰 환호를 보낼 곡이다. 버스커버스커와 타이거JK, 윤미래 역시 훌륭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이거다. 2014년의 K팝은 여전히 잘나갈 것이고, 멋진 노래들을 들을 생각에 난 벌써부터 설렌다는 점이다.



마크 러셀 캐나다인으로 미 펜실베이니아대 졸업 후 한국에서 대중문화 프리랜서 기자로 일한다. 신간 『케이팝 나우 (K-Pop Now!)』가 이달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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