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들의 불매 운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추석 대목을 핑계로 가격을 올려 받으려는 상품들에 대해서 전국 27개 여성 단체에서는 불매 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불매 운동의 대장이 된 상품들의 품목은 쌀·찹쌀·밀·콩·양파·사과·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달걀·오징어·북어·설탕·조미료 등의 식료품에서부터 고무신·「와이샤쓰」「메리야스」·내의 등 의류에 이르기까지의 거의 모든 생활 필수품을 망라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하나같이 『검소한 추석 보내기 운동』을 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수요 대상들이고 보면 거기에 소비자의 약점이 있고 또 그 약점을 틈타 값을 올려 받으려는 상혼이 도량 할 만한 품목들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마당에서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것은 소비자 자신밖에 없다. 따라서 여성 단체의 불매 운동은 바로 소비자의 자위 자조 행위라 할 수 있다.
『소비자가 왕』이라 함은 그 소비자들 스스로의 자각과 자위책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한낱 장사치들의 판매 증진 「캠페인」을 위한 사탕발림 구호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단 소비자가 스스로의 권한에 눈을 뜨고 그 권좌를 지키기 위해 조직적인 운동을 전개한다면 세상에 소비자 「그룹」처럼 방대하고 막강한 「프레셔·그룹」도 없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생산화는 될 수 없어도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소비자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불매 운동을 결의한 여성 단체들만 하더라도 전국에 걸친 그 회원 수는 2백80만 명을 헤아리고 있다.
따라서 이번 「캠페인」은 조직의 잠재력을 회원들이 자각하기 여하에 따라 능히 성공으로 몰고 가기에 충분한 것이라 평가된다.
그러나 「권리」나 「현」이 이란 원래 그 위에 무위 안주하고 있는 자를 위해서는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권리와 힘은 그것을 행사할 때 비로소 실체적인 권리와 힘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갖고「있다」 하는 자위에서 벗어나 행사「한다」 하는 실천을 통해서만 비로소 참된 권리요 힘이 되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권리와 힘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는 이번에 여성 단체들의 주도에 의해서 시작되는 값 올린 상품 불매 운동은 넓은 의미에 있어서의 시민권 행사의 전반적인 자각에 좋은 선편을 친 것이라고 높이 평가됨직하다.
기왕에 시작된 이 운동에는 사회 각계의 특히 「매스·미디어」의 협조가 요망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번 운동이 추석 대목만을 계기로 한 일시적인 운동이 아니라 상설 기구를 설치해서 연중무휴의 소비자 보호운동으로까지 발전하여야 할 것으로 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고언을 덧붙이자면 불매 운동의 대상 품목을 농수산물을 중심으로 함으로써 농어민들과 같이 어느 모로 보나 약한 생산자들을 대상 삼을 것이 아니라 공산품 제조업과 같은 대기업의 강한 생산자들의 제품을 주로 겨냥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