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조제 행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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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약국의 의약품판매질서가 문란하여 도리어 병자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기에 이른 경우가 급증하고있다. 최근 약사부인이 대리 조제한 약을 먹고 산모가 목숨을 잃은 사건이 대구에서 발생,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거니와 이와 비슷한 사례는 경향 각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약사법은 『약사가 아니면 약국을 개설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약사가 약국 개설허가를 얻은 뒤에는 허가증을 대여하는 일이 허다하다함은 하나의 상식처럼 돼 있다.
법은 또 약국 개설자는 자신이 그 약국을 관리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예외적으로 시장·도지사의 승인을 얻어 그 약국에 종사하는 약사 중에서 관리자를 지정하여 관리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실제는 약사 아닌 가족이나 종업원에게 관리시키고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법은 『약사가 아니면 의약품을 조제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약사는 의사의 처방전에 따라서 조제해야 하고, 약사가 조제를 한 때에는 당해 처방전에 조제연월일, 기타를 기재하고 이 처방전은 2년간 보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처방전에 의한 조제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이 약사가 문진하여 독자적으로 조제하고 있는 것 또한 우리의 실정인 것이다.
선진 각국에서는 의약분업이 원칙으로 되어 있어 의사의 처방전 없이는 약을 구할 수도 없다. 우리 나라에서도 법은 의약분업을 원칙으로 하여 의사의 처방전에 의해서만 조제하도록 하고 있으나 병원마다 약국은 두고 있어 약사들에게 처방전이 돌아오는 일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래서 실상 우리 나라 약국에서는 병원의 처방전 없이도 약국 관리인 마음대로 문진하고는 약을 조제하는 것이 오히려 상례처럼 되어버렸다. 요컨대 의약분업이 실현되어 의사의 처방전 없이는 약을 조제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현재의 병환과 의사 수 등을 감안할 때 당장에는 실현성이 희박한데서 나온 현상인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 나라의 약국은 병원을 대신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약국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약사이거나 아니거나 간에 환자의 병세를 묻고는 자가 조제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되어있다. 통계에 의하더라도 대부분의 환자들은 병원을 찾지 않고 약국을 찾아 약을 사먹고 있는 실정이라 한다. 따라서 서민들의 보건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의약분업이 완전히 실시될 때까지라도 획기적인 약국운영 개선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약사법은 약사 아닌 사람이 의약품을 조제한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단속과 처벌이 거의 유명무실한 실정이라 한다. 보건사회부나 시장·도지사 등은 약국에 대한 감독을 보다 엄격히 하여 시민의 보건향상에 노력하여야할 것이다. 감독 당국은 특히 약사회의 감독을 철저히 하여 약사윤리를 확립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대한약사회는 비 개업회원에게도 회비를 받아가기 때문에 약사자격이 있는 사람은 회비납부를 위하여서도 면허증을 대여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한다. 약사회는 회비 강징이 비위의 한 요인이 된다고 한다면 이를 과감히 시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또 업자간에 행해지고 있는 과대선전행위 등도 이를 자율적으로 규제하여야 할 것이다.
약사법은 의약품 등의 과대광고행위는 금지하고 있으나 약국의 과대·허위광고에 대하여서는 처벌규정을 두지 않고 있는데 의료법에서와 같이 약국의 과대·허위광고에 대해서도 규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약국에서 가족이나 식모 등이 약사행세를 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다시는 없도록 약국개설자는 특히 자제하여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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