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3)제31화 내가 아는 박헌영(14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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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태식 피체>
변귀현은 이승엽계로 맹종호(남노당 유격대 제10지 대장으로 김일성에 대하여 「쿠데타」를 음모하였다는 죄로 북한에서 총살당함)의 친구이며 「노력인민」공장책에서부터 기관지부 책임자 같이 되어있었다. 나이가 나보다 14∼15세, 많아 44∼45세 정도였었다.
나는 그 이튿날 변귀현을 만나 사업의 내용을 자세히 실명하고 반드시 성공적으로 완수하라고 명령을 전해주었다. W와의 접선의 날짜는 4월4일 하오 6시였다. 작전의 준비를 급속히 추진시켰다.
W가 김삼룡을 빼돌려 나오면 일시적으로 피신시킬 「아지트」도 마련하였었다.
그러나 이 작전에서 내가 현장에 나가지 않으면 안될 사정이 있었다. 변귀현이 정태식의 개인비서 H의 얼굴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H가 W의 동생을 데리고 나오고 내가 변귀현과 함께 가서 그 두 사람을 접선시켜주기로 하였었다. 그러면 변귀현은 W의 동생을 통하여 W와 접선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정태식은 이 작전이 중대한 것인 만큼 내가 직접 W와 만나지는 않더라도 현장에 나가서 변귀현과 W의 동생과의 접선이 무사히 이뤄지는 것을 지휘하며 확인하는 것을 바랐기 때문에 내 자신이 현장에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4월4일 하오 6시 나는 변귀현을 데리고 혜화동 「로터리」에서 명륜동을 향하여 한길 남쪽보도를 걸어가기로 하고 저쪽에서는 H가 W의 동생을 데리고 서울대학병원 뒤쪽의 명륜동에서 혜화동 「로터리」를 향하여 한길의 남쪽 길로 걸어오기로 되어있었다.
그날 4월4일 하오 6시 조금 전 나는 동소문 밖 한국은행사택 앞 소나무 옆에서 변귀현을 만났다. 수염이 짙은 변귀현은 면도를 말끔하게 하고 「스프링·코트」에 신사모자를 쓰고 미리 와서 나를 기다리고있었다.
나는 변을 데리고 동소문 고개에서 혜화동 「로터리」쪽으로 주의 깊게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 한 걸음 한 걸음 시간의 정각을 맞추어 약속한 현장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이 일의 결과를 나 자신도 예측할 수 없었다. 불안과 희망이 엇갈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하며 경학원 입구 가까이 오자 H가 키가 큰 청년을 데리고 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옆에 따라오는 변귀현에게 『저 애요, 저 애, 둘이 나란히 오는 저 애들』하며 낮은 목소리로 가리켜 주고는 변귀현의 뒤로 빠져 보도에서 한길로 내려섰다.
변귀현이 H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네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한길을 횡단하여 재빨리 경학원 쪽으로 뛰었다. 혜화동으로 빠져 동소문 한국은행 사택 있는 곳으로 하여 삼선교로 나왔었다.
마침 전차가 돈암동 종점을 향하여 출발하는 찰나였다. 나는 뛰어서 그 전차에 올랐었다. 내가 맨 나중에 겨우 뛰어 탔으니 미행이 있을리가 없었다. 그래도 다시 한번 더 확인하기 위하여 그 다음 정거장에서 전차가 발차할 때 이번에는 맨 나중에 전차에서 뛰어내렸다. 내 뒤에 전차에서 뛰어내려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비로소 안심을 하고 골목길을 택하여 안암동 쪽으로 갔다. 나의 「아지트」에 돌아와서 변귀현의 무사 성공을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 이튿날 4윌5일 상오 10시 나의 비서를 정태식의 비서 H와 만나 밤사이의 안전을 확인하는 돈암동 개천둑길에 내어 보냈다.
그런데 얼마 뒤 내 비서가 돌아와 H가 안전확인 선에 나오지 않았었다는 것이었다. 나의 가슴은 덜컥 내려앉았다. 어젯밤에 H가 체포된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되었다. 어제 그 현장에서 H가 체포되었다 하더라도 밤에 H가 정태식 「아지트」에 결과를 보고하러가지 않으면 정태식이 H의 사고를 알고 피했겠지 하고 자기위안도하여 보았다. 12시에 복선이 있었다.
나의 비서가 다시 복선에 다녀와서 역시 H가 나오지 않았더라는 것을 들을 때 확실히 사고가 났다고 나는 단정하였다. 나는 곧 채항석에게 연락을 하여 보려고 산업은행 2층 계리 부장의 방을 찾아가 보려고 하였으나 그날이 마침 식목일로 휴일이었기 때문에 단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이튿날 4월6일 상오10시 안전확인 선에 나 자신이 직접 나가봤다. H가 잡혔으면 정태식이 나에게 연락하려고 누군가 내어 보내리라 고도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그 길로 산업은행으로 갔었다. 바로 2층 채환석의 사무실로 들어가 보니 채항석의 큰 「테이블」과 의자자리는 비어있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계리 부장은 오늘 결근이라는 것이었다.
『큰일났구나. 전부 다 잡혔구나』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였다. 그런데 한군데 꼭 알아볼 때가 있었다. 채항석 부인 장병민의 친구 집이 생각났다. 대구여자로서 서울대교수 부인이었다.
언젠가 채의 부인과같이 그 대학 교수부인 집 앞을 지날 때 우연히 그 부인을 만나 소개를 받아 인사한 일이 있었다.
남편은 반공 교수였으나 부인의 친정동생이 남노당원이었다는 말을 채 부인에게서 들어 알고 있었다.
그 대학교수부인을 찾아가서 채항석 집으로 보내어 연락을 취하여 보자고 마음을 먹고 돈암동으로 갔다. 그 집 앞에 가서 살짝 대문을 몇 번 밀어 봤다. 대문이 찌걱거리는 소리를 듣고 그 부인이 축담에 내려와서 대문 쪽을 살펴보더니 뛰어내려와서 대문을 열어주며 『아이구! 김 선생님! 큰일 났어요. 그저께 밤에 정 선생과, 채 부부 내외, 그 집 전부가 다 잡혀갔어요.
지금 김 선생 하나만 잡으면 다 된다고 서울시내 형사대가 짝 깔렸대요. 낯이 희고 곱상스럽게 생기고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라면 다 잡아간대요. 그런데 김 선생님 이렇게 나다녀됩니까』하며 경상도사투리로 나에게 동정을 표시하여 주는 것이었다.
『겁이 나면 이런 일을 하고 다니겠습니까. 대단히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하고 그 집 문 앞을 떠났다.
일은 다 틀렸다. 모두 잡힌 것이다. 눈앞이 캄캄하며 옮기는 발걸음이 어디 닿는지 허공을 밟는 것 같았다. <계속><제자 박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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