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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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 깊은 겨울에 부채를 준다고 이상히 생각지 말아라. 너는 지금 나이 어리니 어찌 능히 알리오 마는 서로 생각하는 밤중, 가슴에 불이 나게 되면 홀로 무더운 염천보다 더하리라.』 (이조 임제의 시)
흐르는 땀뿐만 아니라 가슴의 불까지도 가라앉혀 준다는 부채-.
우리의 선조들은 이 부채를 그 풍류로 아끼고 즐겨왔다.
이조의 양반들은 한 겨울 외출에도 합죽선을 손에 들었으며 명창 등이 숨막히는 가락을 뽑을 때도, 광대가 한창 아슬아슬하게 줄을 탈 때도 와락 펴지는 부채 살의 소리가 있었다. 또한 그것은 혼례 날 긴장된 신랑 신부의 굳은 표정을 감싸주는 청색(신랑 부채) 홍색(신부 부채)의 가리개였으며 숙연한 상주 손에는 언제나 하얀 부채, 그리고 신이 오른 무녀의 손에 가면 울긋불긋 도화 호접의 날개가 된다. 양산같은 윤선, 파리를 쫓는 긴 자루 달린 단선도 한여름의 벗이었다.
멋과 바람을 부르는 것이기 때문인지 부채는 예부터 보내고 받는 정의 선물로 언제나 흐뭇한 이야기를 앉고 다녔다.
옛 중국에서는 착한 사람을 뽑아 표창할 때 기념품으로 부채를 주었다. 우리의 접 부채(합죽선)는 중국과 몽고에 토산품으로 선물하여 고려선이라는 이름까지 생겼다.
부채선물의 한철은 더운 여름을 예고하는 단오날이었다. 각 고을 원님들은 온갖 멋과 충성을 담은 부채를 왕에게 진상했으며 임금도 특별히 신하들에게 부채(단오사선)를 내렸다. 그리고 이날 임금은 각 고을의 진상된 부채를 세어봄으로써 지난 1년간 자신의 「세력」을 확인하며 민심을 재어 본다는 것이다. 부채를 올려보내지 않은 고을은 은근히 임금을 원망하고 있음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부채는 이미 고려 초부터 만들어진 기록이 있다.
재료나 모양에 따라 70종이 넘지만 크게 접 부채와 방구 부채로 나눌 수 있다. 방구 부채는 부채 살에 헝겊이나 비단·종이를 붙여 만든 둥근 형이며 접 부채는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부채 살에 종이를 붙여 만든 것이다.
방구 부채는 흔히 부녀자들이 많이 썼으며 남자들도 집안에선 이것을 부쳤다. 초엽모양의 큰 부채는 옛 고관들의 의식물로 쓰여졌다. <윤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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