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벼룩|문희식<이대교수·불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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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중요한 일을 계획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 전력을 다할 때 그 의도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도 못하고 그 일에 끼어들어 오직 자기만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망쳐 버리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가장 위험한 요소는 이처럼 길게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당장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모든 것을 망쳐버리는 경향이다.
이것은 너무나 일반적인 경향이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하게 보이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위험은 더욱 더 심각한 것이다.
불경의 『대방편불보은경』에는 이와 벼룩이라는 의미 심장한 비유로써 인연을 그려낸 이야기가 있다. 한 무선비가 깊은 산 속에서 도를 닦고 있었다. 이 비구의 옷에는 한 마리의 이가 붙어 언제나 괴로움을 주기 때문에 비구는 이와 약속을 하였다.
-내가 좌선을 하는 동안 나의 피를 빨지 않는다면 그 나머지 시간에는 충분히 빨도록 해주지.
이는 이 약속을 지키고 결코 비구의 좌선하는 동안만은 방해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 마리의 벼룩이 이를 찾아와
-자네는 살찌고 혈색도 좋은데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다.
-나의 주인은 매일 선정을 수행하며 시간을 정해서 나로 하여금 마음껏 먹고 마시는 일을 허용하였고 나도 시간을 잘 지키기 때문에 이처럼 건강하지-하고 이는 대답하였다.
벼룩은 이에 그 비법을 가르쳐 달라고 애원하였다. 이는 이 가련한 벼룩을 불쌍히 여기고 동거를 허가하였으나 단 시간만은 절대로 지켜야만 한다고 단단히 타일렀다.
바로 그때 비구는 좌선을 시작하였다. 그의 몸에 기어오른 벼룩은 오랜만에 사람의 고기냄새를 맡고 나니 견딜 도리가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약속도 잊어버리고 닥치는 대로 비구의 몸을 물어뜯으며 뛰어다녔다.
비구는 심신의 정숙이 깨져 버렸기 때문에 선정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불을 피우고 나서 옷을 벗어서 불에 태워 버렸다. 이도 벼룩도 옷과 함께 타버린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이러한 좋지 못한 인연의 끝없는 악순환으로 되어 있다. 출판사의 경우만 보더라도 무책임하게 날림으로 책을 만들고 포장만 번지르르 하게 꾸며 놓고 명사들의 추천을 얻어 신문에 크게 광고를 내어 한번에 이익을 보려고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시간이 가면 그 책은 하나의 휴지 뭉치에 지나지 않게 되고 그것을 추천하는 명사들도 돈 몇 푼에 이름을 팔았다고 밖에는 볼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오랜 세월을 두고 연구된 가치 있는 책들은 책의 상품시장에서 물러나게 되고 명사도 악서를 선전하여 용돈을 얻어 쓰는 사회의 암 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게 된다. 거기에는 상호이용 이외의 인간미란 없기 때문에 신의도 법칙도 없다.
돈 몇 푼 얻어먹고 엉터리를 교수로 쓰기 위해서 발광하는 인간, 그리고 개울에 물고기가 번식하고 낚시꾼들이나 고기 잡는 아이들이 즐기기 시작하면 으례히 누가 나타나 약을 뿌려 물고기를 몰살시켜 버리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알밴 붕어들 수천 마리가 물에 떠 다 건지지도 못한 채 다음날은 썩어 버린다. 그리고 낚시꾼과 어린이들의 즐거움은 영 사라져 버린다. 여기에 양심적으로 살려는 인간의 고민이 있고 싫건 좋건 벼룩과 운명을 같이할 수밖에 없는 이로서의 생애를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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