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캉스·시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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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찌는 듯한 염천의 작열은 연일 「콘크리트·정글」 사이를 누비며 뻗쳐 있는 차도의 「아스팔트」를 녹이는 맹위를 떨치며 도시인의 기력을 뺏어가고 있다. 더우기 요새는 오랜 가뭄 끝에 때때로 내리는 비로 제법 습도마저 있어 이른바 불쾌지수가 높은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해마다 겪는 더위라고는 하지만 아직 7월의 문턱이고 보면 올해의 더위는 예년의 비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대개 이 무렵이면 「바캉스」가 시작된다. 약간의 「보너스」를 타서 그 돈으로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잠시나마 도시를 벗어나 낙산 낙수하며 1년 동안 쌓였던 피로를 풀어 보는 때가 오는 것이다.
그런데 어제 본지에 보도된 전국 주요 기업체의 「보너스」액과 휴가 일수는 대체로 작년의 수준을 유지하는데 불과하다. 이미 대개의 기업이 불황을 벗어나 다시 성장에의 길에 오르고 있음이 사실이라면, 그리고「보너스」의 뜻이 진정 상여에 있다면, 그 성장의 여택이 기업 종사자 전원에게 고루 돌아가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극히 간단한, 그러면서도 중요한 원칙을 잊고 있는 기업주들은 없는지 이 기회에 반생을 촉구하고 싶다.
여하간 금년의 「보너스」는 이미 받았으니 내년에나 기대를 걸어보기로 하고 그 얼마간의 돈을 쪼개어 「바캉스」의 길에 오르는 시민들에겐 또 문제가 많을 것이다. 즐거운 휴가를 보내겠다는 마음은 일종의 의무감 마저 자아내며 야릇한 긴장감에 싸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불안한 마음이란 일촉즉발이다. 혼잡한 교통, 과·부족한 시설, 불건전한 풍기, 싸늘한 인정 등등은 「바캉스」에 걸었던 꿈과 같은 소원을 여지없이 무산시키고 일처도 무청산이란 고경을 맛보게 한다. 평화로운 마음으로 휴가를 보낼 수 있는 환경이 몹시 아쉽다. 그러나 이것은 일조 일석이나, 또 어느 개인 한사람의 힘만으로써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한편 생각하면 마음의 평화란 본인의 작심 여하에도 달려 있다. 우선 지나친 낭비나 환영을 일삼은들 무엇이 남겠는가. 각자가 분수에 맞는 조용한 며칠을 보내기로 미리 마음먹어야 할 것이다.
바쁜 도시 생활에서는 가족끼리도 충분한 대화 없이 지내기가 일쑤이다.
그러므로 이 짧은 기간이나마 그 동안에 미흡했던 가정 교육·가족 관계를 바로 잡는데 쓰여진다면 다행이다. 모처럼 「소사이어티」를 벗어나 「커뮤니티」속에서 살아 볼 수 있다면 더욱 좋다.
또 인간이 자연을 정복한다는 비극은 날마다 일어나는 새로운 공해에 시달리며 절감하는 터이지만 한번 도시를 떠나보면 인간과 자연의 조화라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가에 눈을 뜨게 된다. 한번 파괴된 자연은 쉽게 소생할 수 없는 것이니 이 아름다운 자연을 언제까지나 깨끗이 보전토록 각자가 조심해야겠다.
휴식은 나태가 아니다. 오랜 피로를 풀고 새로 일할 수 있는 의욕을 길러 보자는데 그 뜻이 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도리어 피로를 더하고 의욕을 잃게 되는 수도 생기게 된다. 해마다 있는 「바캉스」라고 그저 무심히 보낼 것이 아니라 이런 점에 유의하여 모두 유익한 며칠을 보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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