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문제의 매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일부 일류고교 및 대학의 입시문제 누설사건은 어떤 의미에선 이 사회의 『도의적 전복』을 꾀한 희대의 범죄사건이라 해서 지나침이 없다.
그들은 간첩들과 같은 지하조직과 두더지와 같은 지하활동을 통해서 이 사회의 도의적 근간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 둘의 범죄로 말미암아 희생을 당한 측은 일반 시민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거금을 주어 입시문제를 산 학부모들이나 그들의 자녀들은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부위자강하며 경애로 맺어져야할 부자·사제간의 관계, 또는 붕우간의 신의 등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인륜관계의 총체라 할 수 있다. 어버이가 자식들에게 부정을 권하고 스승이 제자에게 부정을 맡고, 붕우간에 부정을 숨기도록 도의의 빛을 땅에 떨어뜨리게 한 것이 이 사건의 핵심인 것이다.
사건에 말려든 사람들의 사회적 역할이나 사회적 기대의 측면에서 본다면 누구보다도 관련교사의 죄와 책임이 가장 무겁다. 전과자인 두목 오모를 중심으로 한 입시문제유출「브로커」들은 차라리 무슨 짓을 하든 언제나 돈만 벌면 된다는 상습적인, 혹은 잠재적인 사기꾼들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교육자의 입장에 있으면서 엄정해야할 입시제도를 그들에게 돈벌이의 기회로서 제공하고,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입시제도가 마치 금품으로써 좌우되는 것처럼 「사탄」적 주선의 역할을 스스로 담당하고 나선 관련교사들은 바로 그들의 교사라는 신분 때문에 이중·삼중의 사회적 처신을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부정을 저질러 눈 먼 돈으로 치부를 한 범죄교사들이 직장에서의 그들의 졸부적 행각으로 선량한 동료들의 방직분위기를 얼마나 흐려 놓았고 교실에 들어가선 아이들 앞에서 어떠한 교육(?)을 했을 것인가를 상도할 때, 이들 교사의 가면을 둘러쓴 파렴치한들의 배신의 파급효과는 이루 측량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한편, 이들 「브로커」들 및 범죄구사들과 맞장구를 쳐서 훔쳐 온 시험문제지를 산 학부모들의 행위도 그 자체가 하나의 엄연한 범죄방조 행위일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부정한 방법으로 일류교에 입학을 시킨 철없는 자녀들은 또한 어버이들의 범죄공모자의 너울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이미 부모들의 애정의 소치라고는 변명할 수 없는 비애정이요 반애정이다. 분수에 맞지 않는 일류교에 터무니없는 우수성적으로 입학을 하게 된 부정입학생들이 등교를 거부하거나 가출을 꾀하기까지 했다는 소식이 그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일류교에 대한 부모들의 허영이 자식들의 양심에 평생 지울 수 없는 먹칠을 한 것이다.
학교의 입학에까지 모든 부정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으로 매수하려는 사람들이란 도대체 그 돈 자체를 벌기 위해서는 무슨 수단 방법을 가렸겠느냐 하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실상 이번 입시문제 누설사건의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이 「돈만 벌면」 「돈만 있으면…」하는 금권만능주의의 사회풍조이다.
그리고 그 같은 개탄할 세태가 바로 그에 대해서 면역이 되어 있어야 할 교육계의 한 구석을 침식한 것이다. 이번 사건은 사회풍조의 정화와 교육계 및 학부모들의 자생을 위한 심각한 경종으로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