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는 역사 실패자 될 것" 양제츠 부총리, 공개 비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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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특히 중국은 부총리급 인사까지 나서는 등 비난의 강도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크리스마스 휴가철인 미국 역시 주요 언론들이 비판을 멈추지 않고 있다.

 양제츠 중국 외교·안보 담당 국무위원은 28일 외교부 홈페이지에 발표한 담화문에서 “아베 총리는 며칠 전 천하에서 가장 옳지 못한 행동을 감행했다.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은 평화를 사랑하는 전 세계인에 대한 공개적 도발이자 역사 정의와 인류 양심에 대한 난폭한 유린 행위이고 동시에 유엔 헌장에 기초한 전후 국제질서에 대한 분별 없는 도전”이라고 맹비난했다. 중국이 대일 관계에서 부총리급인 국무위원까지 나서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특히 양 위원은 첫마디만 ‘아베 총리’라고 호칭하고 이후에는 직함과 존칭 없이 ‘아베’라고만 불렀다.

 그는 “아베의 시대역행적 행태는 당연히 중국 정부와 인민, 국제사회의 강렬한 반대와 준엄한 비난을 받았으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의 본질은 일본이 과거 역사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군국주의의 대외침략과 식민통치 역사를 깊이 반성할 수 있는지 없는지와 관련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중국인은 (다시는) 모욕을 당할 수 없고, 아시아·세계 인민들도 업신여김을 당할 수 없다. 아베는 반드시 실질적 행동으로 엄중한 착오와 부정적 영향을 없애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시아 이웃 국가, 국제사회로부터 더욱 신뢰를 잃을 것이고 역사의 무대 위에서 철저한 실패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중국 국방부 겅옌성(耿雁生) 대변인은 26일 “일본 지도자가 중국과 아시아 전쟁피해국 인민들의 감정을 난폭하게 유린하고 공연히 역사 정의와 인류 양심의 길에 도전한 것에 강력히 분개하며 이로 인한 모든 부정적 결과에 대해 일본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난했다.

 아베 총리가 집권 후 공을 들여온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도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싱가포르 외무부는 29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지역의 신뢰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이어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로 지역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의 야스쿠니 참배는 부정적인 반응과 감정들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싱가포르를 포함한 동남아는 아베 총리가 지난해 12월 취임 후 한국·중국과 외교 갈등을 빚는 와중에 공을 들인 지역이다.

 미국의 유력지들도 아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하게 비난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28일(현지시간) 사설에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는 역내 긴장을 높이는 쓸데없는 도발”이라고 비판했다. WP는 “특히 과거사 문제로 갈등이 심화된 한국과 일본 간 관계 개선의 여지가 있었지만 야스쿠니 참배가 이런 분위기를 한순간에 망쳤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베 총리의 국제적 입지와 일본 안보를 더 약화시킬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WP는 최근 중국과 북한의 호전적인 행동을 감안하면 아베 총리가 군국화를 추진하는 것도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이런 정책을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제국주의 향수로 연결시키면서 스스로 명분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도 이날 ‘일본 총리가 평화주의에서 명백히 멀어졌다’는 기사를 통해 “일본은 미국의 신뢰할 만한 동맹국이 아니라 새로운 골칫거리로 등장했다”고 비판했다. 또 “일본경제의 회생과 최근 총리의 우경화 행보는 충돌하는 지점이 많아 위험천만한 외줄타기를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일본의 유명 철학자인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의 말을 인용해 “아베 총리의 역사관은 미국의 입장에서 급격히 벗어났다”며 “아베 총리는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재편한 질서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도 비판했다.

베이징·워싱턴=최형규·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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