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만의 귀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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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0여년전에 미국으로간 친구가 있다. 가지 말라고 모두 말렸다. 한국에 있으면 지식층이요, 생활도 넉넉한데 거기가면 노동자 밖에 더 되느냐, 네가 닦은 학문이 아깝다는 이유였다.
그 친구는 중국의 고사를 말하며 기어이 떠났다. 즉 옛날 중국에 남편도 자식도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여인이 있었다. 저쪽 나라로 가면 호랑이가 없을 텐데 하필 여기서 사느냐고 하니까, 그 나라는 호랑이 보다 더 무서운 악정이 있기 때문에 그래도 여기가 낫다
고 대답했다는 얘기다.
이 친구가 10여년만에 잠깐 모국에 왔다. 김포공항에서 집에 오는 찻속에서 줄곧 흥분했다. 『반만년 역사상 거리가 이렇게 깨끗한 적이 있었는가. 야! 좋구나 정말.』
『옳소.』
『5천년 역사에 국민이 이처럼 옷을 잘 입은 적이 있었는가!』
『옳소.』
『무상원조를 그렇게 많이 받았던 이정권 때에, 언제 공장 하나가 제대로 섰으며, 불과 2m폭 강에라도 나무다리 하나를 탄탄히 만든 적이 있었던가.】
『옳소.』
『지금은 한강 다리만도 몇 개며, 시내는, 대관절 자동차의 흥수구나. 불과 13년 전만해도 초라한 「시발택시」가 몇 대 달달거리고 다녔었는데, 듣던 바보다 훨씬 발전했구나. 정말 훌륭해졌어.』『옳소.』
『지하철이 생기고, 작년에는 남북공동성명을 선도하고, 1년만에 또 동구권과 교역의 뜻을 밝히고, 문호개방의 의사를 표시했으니 조국은 과연 찬란하도다. 반만년만에 우리도 나라다운 것을 세계에 알리게 됐잖아!』
『옳소.』
차가 조금 더 시내를 돌았다.
『침만 뱉어도 벌금이 얼마라니까, 「버스」뒤에서 저렇게 무시무시한 배기「개스」를 남의 얼굴에 끼엊으니, 저 벌금은 엄청나겠구나.』
『……….』
하룻밤을 잤다.
『뭐라구? 서장차 운전사가 역살도주혐의인데, 형사들이 엉뚱한 운전사와 조수를 자백하라고 고문했다구? 이거 정말이니?』
『……….』
『대관절참, 「미스터김」말이야. 그 사람 직장에는 승진이라는 제도가 없니? 10여년을 여전히 그꼴로 있더라. 성실하고, 두뇌는 명석한 사람이었지?』
『……….』
며칠 후 그 친구가 퍼붓는 질문의 홍수였다. 【한말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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