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특별선언의 배경과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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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국외교25년 사상 가장 진취적 의미를 갖는 이번 평화통일외교선언은 현실 국제정치상황 여건의 급격한 변모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정부당국의 현명한 정책전환임에 틀림없다. 변화의 세계를 향한 적시의 자주적·능동적·현실적인 조치인 것이다. 그동안 우리를 에워싼 국제환경의 추세는 냉전종식과 현상유지, 화해와 관계개선 내지 탈 「이데올로기」적 실리추구로 특징지어져 왔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외교정책은 그러한 방향감각을 송두리째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손 치더라도 건국 후 오랫동안 조건 부여된 전후의 냉전생리구조를 탈피치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번 특별선언을 계기로 우리의 외교 정책적 자세는 종전의 전후 정향을 지양한 새로운 차원의 새 외교시대에 접어든 것 같다.
한국외교의 획기적 전환을 이룬 특별선언의 배경을 살펴보면, 우선 국제사회환경의 두드러진 변모를 들 수 있다. 미·소 양대국의 「리더쉽」에 의한 세계 경찰적 기능은 각기 그 진영 안에서의 도전으로 그 체제가 다소 와해하기 시작했고, 또한 전후 새로이 등장한 신생제국들이 그들의 국제사회에 대한 종전의 지방사 적이며 수동적인 자세를 지양하여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세계사형성에 참여함으로써 국제사회의 구조적 변모에 일역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변질과정에서 우리의 외교정책 설정과 상관관계가 깊은 미국의 대외정책의 변질이 만 부득이한 것이었다. 즉 전후의 과잉언질에서 미국의 국력도 한계점에 도달했고, 그 결과 미국의 대외정책도 상당한 수준 선택적 유연성을 수반했다. 대 공산권과의 실리외교추구, 미·소 양대 강국간의 우호와 협조시대의 형성, 중공과의 관계개선 등은 특기할만한 변화의 하나였다.
동시에 「유엔」을 비롯한 국제무대에서 미국영향력의 상대적 위축이 일어났다. 국제사회에 있어서 미국영향력의 상대적 위축은 한국외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반면에 소련이나 새로이 국제사회에 등장하여 강력한 발언권을 행사하고 있는 중공을 등에 업고 있는 북한은 지난 7·4성명이후 그것을 교묘히 국제적으로 이용하여 두개의 한국 「이미지」부각에 광분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떻게 보면 작금의 국제정치의 적나라한 현실은 『죄를 나누어 연합하고 이익을 다투어 분열』하는 19세기적 권력정치의 재판이 나타나는 것 같다. 역사의 교훈은 대국간의 그러한 움직임이 약소국의 희생을 강요함을 우리에게 잘 설명하여 준다. 이와 같은 소용돌이 속에서 현실의 국제정치를 직시하고 우리 나름의 자주적이며 능동적인 정책선택이 특별선언의 배경인 것이다. 더욱이 이번 선언 뒤에는 그러한 획기적 변화에 충분히 적응 조화될 수 있는 신장된 우리의 국력과 국민의 총화가 뒷받침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종래의 명분론을 과감히 지양하여 실리추구에 전환함으로써 폭넓은 외교활동의 유연성을 가질 것 같다. 「할슈타인」원칙을 완전히 탈피치 못하여 때로는 소극성을 면치 못한 우리의 외교자세를 적극적인 외교 즉 「정치외교」로 승화시킴으로써 국제사회에 있어서 북한의 대외활동에 역공세를 취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여야겠다. 또한 이번 선언의 잠재적 의의는 소극적 태도를 취했던 일부 우방들이 한국의 재인식에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이 선언으로 인하여 공산국가들의 즉각적인 반응은 기대함순 없다하더라도 1차 적으로 일부 공산국가들과는 해빙에로의 계기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번 성명으로 인하여 국제사회에 비쳐지는 우리의 국가적 조명이 한결 밝아질 것이며 우리도 이제부터는 우리의 외교기량을 발휘하여 대북한수교국들에 적극 진출할수 있는 명분과 가능성이 제시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특별선언의 의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긴장완화와 긴장요소의 해빙이라는 국제적 요청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인 참여와 기여를 뜻하게 된다.
대내적으로도 긴장이 다시 도발될 소지를 없애기 위한 평화의 억지력이 바로 특별선언이다. 남북대화는 계속되고 있으나 도발이 없지 않았다.
특별선언은 민족염원이 통일임을 재 천명하고 그것을 기필코 이룩하겠다는 의지를 구체적인 「평화보장책」으로 밝힌 것이다.
세계 속에 던져진 한국외교의 밝은 내일이 기대된다. 【하경근(중앙대교수·정박 국제정치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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