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자유치의 안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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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수출 1백억「달러」를 실현시킨다는 고율 성장 정책의 강화는 필연적으로 외자도입 규모를 가일층 확대시킬 수밖에 없다.
김 총리는 구주방문 길에서 EC투자 조사단의 파한을 요청하고 있는 한편 미·일지역 경제사절단을 이끄는 대기획은 미국에서 대한 투자「세미나」를 열었다. 이러한 투자교섭이 어느 정도 성과를 올릴 것인지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대일 자본 의존율이 날로 심화되는 과정에서 이를 다각화시켜야 할 필요성은 높다는 점에서 성과있는 교섭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국내외 환경이 수출증대를 위한 좋은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으며 이를 충분히 활용키 위해 고율 차관 고율 성장 정책에 박차를 가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일단 평가할 만한 것이나 그렇다고 앞뒤를 가리지 않고 외자를 받아들여 질서없는 확장을 서둘러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국내외 여건변동을 활용하는데 있어 기본적인 정책자세를 확고히 해줄 것을 강조한다.
우선 모든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가 국민후생의 실질적인 증대에 있는 것이라면 순국민후생이 극대화될 수 있는 외자도입 정책은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보다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국민총생산과 순국민후생이 크게 괴리하는 성질의 외자도입이라든지 국민총생산 증가율과 각종공해의 증가율이 비례하는 성질의 외자도입은 순국민후생의 증대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는 점을 깊이 배려해야 하겠다. 외형적인 물량성장에 치중하여 토지와 노동력만 제공하는 류의 투자나 외자를 허용하려는 듯한 근자의 투자성장정책은 국민후생이라는 각도에서 다시 평가해야 할 줄로 안다.
다음으로 특정국에 대한 자본의존율을 심화시킴으로써 정책적 자율성을 상실하는 위험을 시도해서는 아니된다. 경제적 의존율의 심화가 궁극적으로 정책적인 자율성을 제약한다는 사실은 역사적인 경험으로 보아 분명한 것이므로 이를 고려하지 않고 성장만을 추구하는 모순을 범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비록 잠재성장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외자 의존율을 특정국에 집중시키는 것은 극력 억제해야 하겠다는 것이며 때문에 외자의존의 다각적인 분산에 대해서 명확한 선을 그어둘 필요가 있다.
끝으로 성장의 지속성을 어느 정도 보장하는 성질의 외자를 엄선해야 하겠다. 오늘날 선진국의 산업구조변동을 활용하여 이른바 후진국의 공업화를 촉진시킨다는 일반적인 명제가 인정되고는 있지만 이를 맹신하여 성장정책을 밀고 나갈 때 낭비와 혼란을 자초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그러므로 국제무역구조 변동의 여파를 뒤따라가는 수명이 짧은 방식보다는 이를 예측하고 대처하는 안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근자 선진국 특히 일본의 사양산업이 한국으로 홍수처럼 밀려들고 있는데 이를 엄선하여 받아들이지 않을 때 결국 낭비적인 투자로 귀결될 부분이 적지 않다 할 것이다. 수명이 짧은 분야에 투자가 몰린다면 결과적으로 임금수준만 올려놓아 앞으로 오는 기회에 대처하는 적응력을 약화시킬 것이며, 동시에 자본을 낭비함으로써 구채수습 때문에 신규투자 능력을 억제하는 부실 기업문제에 다시 봉착케 될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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