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 주내 결정] 野 "盧, 특검 수용할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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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송금 사건에 대한 특검의 운명이 고비에 이르렀다.

12일 노무현 대통령과 한나라당 지도부는 서로의 생각을 충분히 주고받았다. 남은 건 청와대.한나라당.민주당 등 삼각 이해 당사자들의 마지막 결단이다.

속단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속사정은 복잡하다. 양당은 모두 임시 지도부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 강경파의 목소리가 세지면 타협은 어렵다.

여야 합의가 불발되면 이때는 盧대통령의 결정이 남는다. 거부권을 행사하면 대야.대국회 관계의 악화를 각오해야 한다.

반대로 특검을 받기 위해선 여권 내부의 균열 가능성, 그리고 국정 주도권의 일부 양보를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한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15일까지 결정해야 한다.

◆거부권 행사할까=청와대의 공식 입장은 일단 '조건부 수용'쪽이다. 가능하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려는 게 고민의 핵심이다. 盧대통령은 국내자금 조성 부분은 DJ 측근들을 가감 없이 조사하되 남북한 간의 신뢰를 깰 수 있는 대북송금 부분은 수사에서 제외해 달라고 한나라당에 요구했다.

북한과의 거래에서 발생한 문제는 형사소추를 면제하는 수정안에 합의해 달라는 것이다.

유인태 정무수석은 스케줄도 제안했다. ▶여야가 수정법안을 만들겠다는 합의를 하고▶盧대통령은 한나라당이 통과시킨 특검법을 14일 공포하며▶추후 수정법안을 통과시키자는 것이다.

柳수석은 "한나라당이 협상에 응하지 않을 경우 수정법안을 만들어 발표한 뒤 우리가 이렇게 특검을 하긴 할테니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해 달라는 게 민주당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 법안은 한나라당만으로 만들어진 것 아니냐"며 "협상 가능성이 배제될 경우엔 (거부권을 행사해 달라는) 민주당 손을 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한나라당에 대한 마지막 압박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참석자들은 "盧대통령이 결국 특검법안을 수용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한나라당 양보할까=청와대 회동 후에도 한나라당은 특검법의 수정 가능성을 단호히 부인했다.

당사로 돌아온 박희태 대표권한대행은 "통과시킨 법안에 대해 우리는 물러설 곳이 없다"며 "특검법 공포에 앞서 사전 개정하기로 합의하는건 있을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규택 총무는 "이미 법안을 통과시키기 전에 특검 시기 단축과 비밀준수 의무 명문화 등 민주당이 요구한 내용을 받아들였다"고도 했다. 다만 공식 입장과 달리 개별적인 견해에선 약간의 융통성이 감지됐다.

회동에 참석한 한 인사는 "盧대통령이 우려하는 대목에 대해 정치적인 선언을 하는 건 검토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대북 관계 등을 감안해 수정법안을 마련하는 건 어렵지만 정치적으로 이를 보장하는 수준이라면 수용할 여지가 있다는 의미다.

박종희(朴鍾熙) 대변인은 "오늘 청와대 회동 결과에 대해 협상을 했다거나 거부했다는 등의 용어는 적절치 않다"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한나라당은 13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당론을 모을 방침이어서 일단 결과가 주목된다.

◆복잡한 민주당=문석호 대변인은 "대북 송금 문제는 특검만을 고집해선 안된다"며 기존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논평을 냈다. 동교동계 기류에 가까운 장전형 부대변인은 "한나라당이 단독 처리한 특검법은 무효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당론엔 변함이 없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대철 대표 등 지도부가 동교동계를 설득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박승희.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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