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진우의 저구마을 편지] 피는 못 속여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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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요 며칠 아들은 7시에 자명종 시계를 맞춰 놓고 자는 데 맛 들였습니다. 어젯밤, 시계 소리 때문에 다른 식구들이 푹 잘 수가 없으니 시계를 방문 밖에 두고 자라고 했습니다. 잠꾸러기 아들은 시계 울리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아침을 맞았습니다. 그게 억울했는지 투덜투덜, 아침 밥상머리에 앉아서도 툭 튀어나온 입이 들어가지 않더군요. 어쩌면 그렇게 제 어릴 적 모습 그대로일까요.

오랜만에 제 아버지께서 집에 오셨습니다. 오늘따라 아버지는 "학교 다녀왔습니다" 인사하고 달려오는 아들처럼 반가웠습니다. 사실 아버지와 저는 닮아도 너무 닮아 도리어 갈등이 많았습니다. 불행하게도 그걸 깨달은 지 몇 달 되지 않습니다. 제 아버지가 제 아들 나이였을 때랍니다. 할머니가 아침에 일 나가시면서 "건아, 어데 가지 말고 요게 있거라이"하고 툇마루를 가리키면 어린 아버지는 저물녘 어머니가 돌아오실 때까지 꼼짝도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답니다. 꽉 막힌 제 아들 성격이 꼭 그 짝이고, 제가 그러합니다. 정말 피는 못 속이나 봅니다. 아버지, 저, 아들 모두가 모습은 달라도 마음은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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