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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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오늘은 한식날이라오.
그러니 동지가 지난 지 1백일하고도 꼭 5일이 지났다오. 이젠 화난춘성하고 만화방창하는 춘3월, 둥실둥실 두둥실 꽃피는 봄이라오.
그러고 보니 어제가 바로 청명에 삼짓날. 강남 갔던 제비도 돌아오고 나비도 어느 시골엔 가는 나타났다 하오. 어제가 아니라도 금명간에 나타난다는 전갈이 있었다오.
이제부턴 마냥 부산하고 흥겹게 되는 철. 에헤 에헤나 에헤야 봄갈이도 시작해야할 판이오.
이미 신령님께 소원도 했고, 점풍도 했다오. 채마전에 씨를 뿌리고 포기포기 손을 대어 북돋고 거두고 가꾸는 일에 신명을 내지 않을 수 없다하겠소.
한식이 명절의 하나가 아닐 수도 없을 터이오. 그건 마냥 봄이 즐거워서 만은 아니라오.
추원보본이라고도 합디다. 어버이 있어 자식이 있고, 자식이 있어 손도 있는 것이 아니겠소? 또한 어버이를 섬기며 어버이를 추모하는….이 어찌 아름답고 갸륵한 마음씨라 아니 할 수 있겠소.
김운순의 열양세시기에도 이릅디다. 기제사는 중히 여기어도 시제는 중히 여기지 않음은 오랑캐의 더러운 습관이라고.
그 시제란 예로는 설날·한식·단오·추석의 네 명절에 지냈었나보오. 하오나 가난한 우리네 어버이들은 한식과 추석에만 주로 절사를 지내는 버릇을 키워왔다 하오.
할 수만 있다면 1년에 몇 번이라도 찾아 뵙고, 손을 보고픈 조상의 묘라오. 할 수만 있다면 말이오.
하오나 마음이 제일일 것이오.
오늘의 내가 있음이 어버이의 은덕 때문일진대 어버이를 섬기는 마음 절로 아니 불어나올 수 있을까 여겨지는 바이오. 할 수만 있다면야 어버이의 유댁을 크게 넓게 편히 만들어 드리고 싶은 심정 어찌 없을까 하오. 그저 갸륵한 마음씨라오.
하오나 모든게 여의치 못한 세상. 살아 생전에 알뜰히 효도를 다 하지도 못한 이 몸, 이제서야 유댁을 넓히고 자주 찾아 뵙는다 해도 무삼 소용이 있으리오 마는 그래도 메어지는 듯한 이 마음 달랠 길이 어디 또 있다 하오리까. 그저 유댁이라도 크게 마련해 드리고 묘비라도 훌륭하게 세워 드릴 수밖에.
하오나 마음씨가 제일이라오. 비록 오늘의 이 몸이 가난하다 한들 또 비록 두평짜리 묘에 소주밖에 올리지 못한다 한들 뭣이 삶이며, 삶의 보람이 뭣인가를, 그리고 또 뭣이 떳떳한 삶인가를 일러주신 어버이에게 절로 고개가 수그러진단 말이오. 또한 알량한 젯상이나마 떳떳이 달게받을 수 있는 어버이 일 것이오. 그런 어버이와 자식이 세상 넓다 한들 기 몇 이뇨, 딱한 일이라 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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