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의 한국] 1. 합리적 사고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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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4면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 5년 동안 다져 놓을 '과학기술 중심 사회'가 만드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국민의 의식 구조는 합리적이고도 과학적으로 바뀌며,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일상 생활은 몰라보게 바뀔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의 고질병인 연줄 사회가 약화되고,1가정 1로봇 시대도 우리 앞에 성큼 다가서는 등 사회 구석 구석이 선진화될 전망이다.

이에 '과학기술 중심 사회가 만드는 미래'라는 시리즈를 마련, 10년 뒤의 미래를 짚어 본다.(편집자)

#가상 장면1=2003년 4월 어느 날 구로공단 전철역. 고장으로 두 시간 가까이 전철에 갇혀 있던 승객들이 역무원에게 몸싸움을 하며 거세게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매표구의 유리창이 깨지기도 했다.

#가상 장면2=2013년 7월 어느 날 고속철도 천안 부근 철도 위. 고속기차가 두시간 동안을 꼼짝 없이 서 있다. 이유는 이곳에 오기 전에 폭우가 쏟아져 앞쪽 철로의 안전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두 시간 연착해 서울에 도착하자 지하철이 자동으로 두시간 연장돼 운행되고 있었다. 서울역에서는 승객들의 항의도 없었을 뿐더러 당연한 기다림이었다는 반응이었다.

가상 장면1은 과학문화가 확산되기 전인 2003년의 우리 의식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합리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감정에 의존해 사태를 해결하려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다.

만약 철로 위에서 문을 열어주었거나 고장을 무시한 채 억지로 운행을 하다가는 큰 참사의 우려가 있는데도 단지 두어 시간 갇혀 있는 것이 억울한 것이다.

그러나 가상 장면2는 비록 고속철로가 비에 유실이 안 됐다 해도 미리 꼼꼼하게 안전 여부를 확인하는 문화가 자리잡은 사회를 보여준다.

승객들도 '전문가들이 철로를 점검하려는 것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등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만큼 사회 각 부문과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높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포항공대 임경순 교수는 "과학문화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매사를 생각하는 등 생활 양식을 결정짓는 것"이라며 "그 문화가 확산되면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불합리한 것으로 여겨졌던 학연.지연.혈연 등 연줄 문화가 약해지는 등 사회 각 부문에 큰 변화가 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줄 문화만큼 한국 사회를 왜곡되게 만드는 것도 드물다. 부하 직원의 능력보다는 연줄에 따라 점수를 더 잘 주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특정 사업이나 채용, 연구과제를 맡을 사람을 선정할 때도 그 같은 일은 알게 모르게 자주 일어난다. 사업의 성공이나 좋은 사람을 채용하는 것보다 연줄이 더 앞서는 때가 많다.

그러나 과학문화가 정착되면 이런 일은 아주 줄어들 것이다.특정 사업을 벌일 때 거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뽑아 쓰지 않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큰데 연줄을 앞세우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업이나 업무의 평가가 엄정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추천문화도 자리를 잡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추천서를 써주는 사람의 대부분은 잘하는 사람이나 못하는 사람이나 '무조건 잘하고 능력이 뛰어나다'고 써준다.

과장해서 써주지 않고, 나쁘게 혹은 그대로 써주면 자칫 감정을 상하기 십상인 문화 탓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추천서를 거의 믿지 않는 분위기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김은경 박사는 미국 제약회사에 근무했던 경험을 다음과 같이 들려준다.

"미국 사회는 추천서를 상당히 신뢰한다. 연구실에서 일할 사람을 뽑을 때 여러 사람의 추천서를 봤는데 혹평도 잘 하지 않지만 과장도 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합리적인 사고가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노무현 정권 5년간 과학문화의 기반을 잘 다진다면 앞으로 10년 뒤 우리나라 사회의 많은 부분이 이처럼 새롭게 변할 것으로 기대된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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