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국장 임명 싸고 정치바람 맞은 FBI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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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외부의 입김이 닿지 않고 모든 정치·행정적인 영향에서 초연하여 오던 미국 FBI(연방수사국)의 전통이 책임자임명 문제를 놓고 흔들리고 있다. 48년 동안 FBI를 거의 혼자서 이끌던 「에드거·후버」국장이 지난해 사망한 뒤로 불과 10개월도 지나지 않아 FBI는 정치문제에 휩쓸려 이의 기능과 수사권한통제 문제까지 대두되고 있는 판이다.
FBI가 이처럼 정치바람을 맞게된 것은「닉슨」대통령이 현재 FBI국장대리를 맡아보고 있는 「패트릭·그레이」를 정식국장으로 임명하는데 동의할 것을 의회에 요청하면서 표면화됐다.
동의 요청안을 다룬 상원법률위원회는 「후버」국장 사망이래 10개월 동안 FBI를 이끌어온 「그레이」씨가 FBI를 부당하게 정치문제에 개입시켰다는 이유로 동의안을 부결시켜 「닉슨」대통령과 대립하고 있다.
「그레이」씨가 상원의원들로부터 호감을 사지 못하는 이유는 실제로는 그가 「닉슨」대통령과 너무 밀착돼 있다는데 원인이 있기 때문이었다. 「닉슨」대통령이 지난해 선거에 입후보했을 때 그는 현직 FBI책임자로서 음양으로 그의 선거운동을 도와주었다는 지목을 받아왔다.
선거「캠페인」중에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닉슨」의 선거운동을 도와준 것은 차치하고라도 「그레이」씨가 상원의원들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게된 것은 「워싱턴」의 민주당 선거운동본부인 「워터게이트」도청사건 수사과정이었다.
선거「캠페인」으로 한창 부산하던 지난해 6월 민주당 본부에서 전화도청장치가 발견되어 조사결과 「닉슨」의 참모2명을 포함한 7명이 관련됐다는 혐의사실이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도청장치에 소요된 8만9천「달러」의 경비가「닉슨」의 재선을 위한 선거운동조직에서 흘러 나왔다는 관련자들의 증언이 크게 문제됐었다.
이를 수사하게된 FBI는 우선 자체 내부에서 곤란을 겪게됐다. 「보스」인 「그레이」국장대리가 8만9천「달러」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 밝힐 필요까지 없다고 결정, 수사범위를 제한해버렸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FBI수사관이 수사의 범위를 백악관에까지 확대, 증언을 들어야겠다고 주장하자 두 사람을 FBI본부에서 지방으로 전출시켜버렸다.
그러나 보도기관에서 계속 이 문제를 들추는 바람에 「그레이」씨는 수사관들이 14명의 백악관 관리들의 증언을 듣도록 허용했다. 단 대통령도 별도로 이 사건을 조사중이므로 「닉슨」대통령의 보좌관인「존·W·딘」이 입회한다는 조건을 붙인 것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수사관들이 올바른 증언을 기대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 「그레이」비판자들의 의견이었다.
게다가 「그레이」씨는 「딘」보좌관에게 80건 이상의 「워터게이트」도청사건수사 관계 서류를 보도록 했다. 아울러 도청 녹음「테이프」까지 넘겨주어 「닉슨」대통령에게 불리한 부분을 미리 알아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비판을 받고 있는 「그레이」씨에 대한 FBI국장임명승인 요청이 상원에 제출되자 법률위원회에서는 「워터게이트」수사과정에서 「그레이」씨가 「닉슨」대통령의 법률문제보좌관인 「딘」씨와 너무 밀착돼 정치색을 드러냈으므로 이와 관련된 「딘」씨의 증언을 듣자고 우선 그의 출석을 요구했다.
그러자 「닉슨」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특권』관례에 따라 이를 확대해석, 「딘」보좌관은 물론 전·현직 백악관 관리들이 의회에 나가 증언하지 않아도 좋다고 이에 맞섰다. 「닉슨」대통령은 3월 중순의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에서 상원이「그레이」씨를 「딘」보좌관을 출석시키기 위한 『인질』로 삼을 속셈이라고 꼬집기까지 했다.
이와 같은 「그레이」씨의 임명을 둘러싼 행정부와 의회의 대립은 「그레이」씨 개인에 대한 문제보다는 FBI에 대한 행정부의 권한확대 기도와 이의 엄정 중립을 보장하려는 의회의 반발로 볼 수 있다.
「후버」국장 재직 때에는 대통령이나 법무장관의 입김에 끄떡도 않고 버티다가 「그레이」씨가 국장대리직을. 맡은 뒤로 「닉슨」대통령과 관련된 사건을 너무 편파적으로 다루었을 뿐 더러 행정부의 간섭에 너무 좌우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 상원의원들의 의견이다. <타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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