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플레」속의 물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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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의 물가대책이 잇달아 발표되고 있음에도 물가문제는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해외「인플레」요인이 우리경제에 너무나 큰 충격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수출과 내수를 조정하기 위해서 마지막 수단으로 수출세부과 문제까지 검토하고 있으며, 물가상승요인을 재정에서「커버」하고 있는 탓으로 재정적자요인이 더욱 확대되고있다.
내수를 외면한 수출「러쉬」에 제동을 걸기 위해 부분적으로 수출세 신설을 검토하고 있는 사실은 그 폭과 적용범위가 얼마가 되든, 국제수지 대책과 상충을 빚게 될 것이고, 재정부담에 의한 가격안정정책은 재정적자의 누적으로써 유동성의 팽창을 가져와 역시 물가안정에 역행하는 모순을 낳게 하고 있다.
심오한 경제이론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작금 물가정책은 이렇듯 다른 정책과의 상호보완적인 기능면에서나 또는 물가의 획기적인 안정이라는 목표추구 노력에서 큰 모순을 빚고 있음이 분명하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물가불안도 그 근본원인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제통화파동에 따른 절상국들의 수출가격인상, 선진국들의 경기회복에 따른 주요 원자재 값의 앙등과 자원부족현상의 심화, 세계식량부족에서 빚어진 양곡가격의 폭등현상, 그리고 국내적으로 수출「러쉬」에 따른 물가수급의 차질 등이 상충되어 물가상승요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처럼 해외요인이 우리경제에 미치고 있는 커다란 주름살은 그것이 수습되기는커녕 최근에 이르러 다시 EC제국과 일본 등 강세국 영향의 변경환율제 채택으로 절상폭이 점점 더 커지고 있고, 특히 일본 같은 나라는 수입이 유리해진 것을 계기로 해서「엥」화 절상에 따른 환차손을 「커버」하기 위해 주요 물자를 매점, 고가로 수출하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어 대일 수입의존도가 40%이상인 우리에게는 더 없이 불리한 여건이 조성돼 가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우리의 대책은 물량공급의 증대를 위한 수입제한의 완화와 특관세 폐지, 관세감면 등 수입부담의 경감, 수출「러쉬」품목의 내수공급 의무화, 그리고 유통과정에 대한 행정규제의 강화와 경영합리화에 의한 원가절감권유 등 극히 미봉적인 대책에 그치고 있다. 이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물가상승을 연간 3%수준에서 억제하려는 지상목표에 얽매여 정책의 조화를 잃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당초 연간물가를 3%수준에서 안정시키기 위한 전제조건은 환율의 정착화, 금리부담의 경감, 미가 및 공공요금의 안정 등이었고, 해외「인플레」요인의 전제에서 빠져 있었다.
그러나 실상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물가정책상의 문젯점은 바로 해외「인플레」요인의 작용이 다른 어느 때 보다도 큰 충격을 가해 오고 있다는데 있다.
이렇듯 당초의 가정과 현실이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도 당초 목표에만 집착하다보니까 정책은 조화를 잃고 문제는 점점 더 어려운 국면에 접어드는 감을 감출 수 없다.
해외「인플레」의 충격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수입제한을 조화하고 여기에 더해서 부분적으로나마 수출세를 매긴다면 국제수지의 개선은 포기해야 할 것이며, 그렇다고 수입 원자재의 부담을 재정에서 계속 「커버」해가려면 엄청난 규모의 재정적자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작년 중에 총재정적자가 9백97억원을 기록한데 이어 올해 들어서도 2월말까지 두 달 동안 4백90억원의 재정적자를 나타낸 것은 이미 드러난 적신호인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특관세 폐지로 약70억원 이상의 관세수입 감소가 예상되고 제분업계에 대한 보조, 이중 맥가제와 도입 외미가격의 상승 등으로 양곡관리기금에서 만도 연내에 1백60억원 내지 2백40억원 가량이 잠식당할 우려가 표명되고 있다. 이러한 재정적자요인은 예산규모를 조정하지 않는 한은 차입에 의한 재정집행을 불가피하게 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통화증발을 가져와 물가안정과는 배치되는 작용을 한다고 봐야한다.
재정적자에 의한 통화증발은 금융부문에 압박을 주게 될 것이고 산업대금 공급에도 문제점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재정적자에 의한 통화증발은 금융부문의 「오버·론」으로 일어나는 통화증발보다 안정유지에 더 해롭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 이유는 재정적자는 세 부담을 통해 또 한번 국민부담으로 보전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금의 재정적자는 단순한 소비보조적 목적으로 누증돼 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정책상의 상위 요인을 완화하여 국민경제전체에 실리를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종합적인 정책조정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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