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대비 잘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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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면 남는 게 시간이라 그동안 안 보이던 게 눈에 들어온다. 냉장고 속, 거실 먼지, 찬장 등 말이다. 사회생활을 꼼꼼히 한 이들일수록 “유통기한 지난 걸 왜 그냥 두느냐”고 아내에게 잔소리하면서 부부 갈등을 키운다. 바쁘다고 신경도 안 쓰더니 은퇴 후 잔소리 해대는 남편, 좋게 볼 아내는 없다. 요리 못하는 남편도 아내 발목을 잡는 밉상이다. 그래서 은퇴 전문가들은 남자의 노후 대비에서 중요한 요소는 요리 등 집안일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보건복지부의 노후 준비 진단지표 개발에 참여한 이소정 남서울대 노인복지학과 교수와 행복한 은퇴연구소 전기보 소장이 제안하는 은퇴 준비 팁을 소개한다.

 복지부가 지난해 6월 35~64세 1035명을 상대로 노후 준비를 조사했더니 건강과 사회적 관계 면에선 상대적으로 잘돼 있었다. 반면 노후 자금과 여가 활동 대비는 취약했다. 이 교수는 “건강보험공단에서 검진을 해주고 꾸준히 운동하는 장년층이 늘어 건강 준비 점수가 가장 높게 나왔고, 한국이 친족 중심의 문화여서 그런지 사회적인 대인 관계 점수도 어느 정도 나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은퇴 후 생활비 마련과 여가를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선 무방비였다. 이 교수는 “그나마 노후 자금은 문제라는 인식이라도 있지만 은퇴 후 무엇을 할지에 대해선 계획 자체가 없는 이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국내 직장인은 청장년기에 취미나 관심사를 돌볼 여유 없이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직장 문화에 젖어있다 보니 은퇴 후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게 어렵다. 남성은 돈벌이에, 여성은 살림하고 애 키우는 데 올인하는 경향이 뚜렷한 것도 은퇴 후 난감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전 소장은 “직장생활이 힘들었다며 1년쯤 쉬겠다는 이들은 2년 후에도 계속 쉬더라”며 “은퇴했다고 쉬겠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골프·여행처럼 휴식이 되는 여가는 싫증나기 쉬운 만큼 자원봉사처럼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활동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전문가로 활동할 수 있는 사진·미술 등의 취미를 갖는 것도 좋다. 이 교수는 “일본에선 고령화에 대비해 기업이 근로자의 멀티 라이프를 지원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다”며 “직장 동호회를 활성화하고 매주 가정의 날 일찍 귀가할 것을 권장하는 등 젊었을 때부터 노후 대비를 생활화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퇴 준비는 은퇴하기 10년 전부터 해야 한다. 제2의 직업을 설계하는 게 핵심이다. 수명이 길어지는 만큼 은퇴 후 인생 시계를 100세에 맞추고 70~80세까지 어떤 일거리를 가질지 계획을 세우라는 얘기다. 자신이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이 좋다. 최소한의 현금을 벌면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을 뜻한다. 직장에 다니는 기간에 하고 싶은 것, 잘 하는 것, 특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뭔지 따져보고 그 능력을 미리 개발해놓지 않으면 답이 없다.

 관심 분야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악기 회사에서 재무담당 업무를 보던 한 은퇴자는 악기 수리에 관심을 가져 이탈리아 유학까지 가기도 했다.

 부부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기 위해선 남편 혼자 점심 차려 먹기, 부엌에 들어가는 걸 꺼리지 않기 등 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 이 교수는 “기업이 고령자를 고용하지 않는 이유가 연령에 따라 위·아래를 판단하는 수직적 사고방식 때문이라는 조사가 있다”며 “은퇴 후 라이프스타일과 사고방식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심리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인 관계 폭을 넓히기 위해선 지자체가 운영하는 평생교육시설 등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강좌를 검색해 한 곳에라도 참여해보는 게 좋다. 한 발 내딛기가 어렵지 일단 시작하면 쉽다.

김성탁·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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