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친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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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오랜만에 읍내에 갈 볼일이 있어서 「버스」를탔다. 산골에서만 살다가 모처럼 나들이를 할때면 으례 옷차림에 신경을 쓰게된다.
포장되지 않은 좁은 신작로를 덜컥거리며 달리는 찻속에서 나는 저만치 앉아 있는 날씬한 아가씨에게 눈길을 돌렸다.
최신 유행의 옷차림에 화려한 얼굴화장, 거기다 입에는 따닥 소리를 내가며 껌을 씹고있다.
그 아가씨앞에 서서 차에 흔들리는 몸을 가누며 나는 내 초라한 차림을 내려다봤다. 유행과는 먼 옷차림에 「매니큐어」도 칠하지 않은 맵시없는 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 지는건 웬일일까.
수예점에 들러 실을 사고난뒤 전보다 더 화려해진 거리를 걸으며 나는 뜻모를 소외감을 느꼈다.
집을 나설때는 농한기라 손도 좀 다듬어 봐야겠다싶어 「매니큐어」도사고 그밖의 소지품들을 살 생각이었는데 내마음속에 일어나고 있는 작은 뉘우침이 나를 「서점」이란 간판이 붙은 책가게앞으로 끌리게 했다. 「릴케」의 시집과 어느작가의 「에세이」집을 사들고 나오는 내 마음은 양장점에서 새옷을 마춰입고 나오던 그 기분과는 다른 포근한 감성이 흐르는 든든한 마음이었다.
귀여운 우리집 개구장이를 위해 약간의 과자를 함께 사들고 집으로오면서 생각했다. 「난 어차피 농촌의 딸인 것을, 아버지의 자랑스런 딸이되기 위해서라도 난 어지러운 사회의 탁류에 휩쓸려서는 안된다」고 다짐했다.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는 차창밖의 빈 들판을내다보며 온 산야를 새하얀 설경으로 만들어 겨울의 고요가 흐르는 밤을 외롭지 않게해줄 이 뜻밖의 친구(?)를들고 밝은 미소를 날려보았다.
신영술<경북 영덕군 지품면 신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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