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물질의 균형|박조준<영락교회당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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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요즘 부쩍 늘어난 말 가운데 하나는 유신이란 말이다. 어느 신문을 펼쳐 드나「라디오」의「다이얼」을 어디에 맞추어도 한가지다. 10월 유신 이래로 생긴 하나의 현상이 아닌가 느껴진다. 국가기관에서 오는 공문은 물론이지만 어떤 개인으로부터 받는 편지에도 의례 유신이란 말을 한마디 서두에 넣는 경우를 본다.
며칠 전 어느 장례식에 참례하였는데 조사를 하는 분이 역시 유신이란 단어를 몇 번이나 거듭하는 것을 들었다. 결혼식에 갔더니 축사를 하는 분이 역시 같은 말을 되풀이하기에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해 왔다.
이 나라가 정말 유신과업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될 국가적인 운명에 처해 있음을 나도 시인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때와 곳의 분별이 없이 유신을 외는 사람의 마음속에 얼마나 유신과업 수행을 위한 과제가 확립되어 있을까 하고.
정말 우리나라는 우리대로의 운명을 개척해 나아가지 않으면 안될 입장에 놓여 있음을 우리 국민은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국민 전체의 총화가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새마을 운동으로 말미암아 원시적인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우리 농촌이 새 모습으로 단장되고 농민들에게 의욕적인 사업들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다.
더구나 우리 정부가 80년대에는 1백억「달러」를 수출하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국민에의 제시는 퍽 고무적이다. 그때쯤 되면 가난한 우리 국민도 조금 나아질 것을 생각할 때 흐뭇한 감도 든다.
그런데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인간이란 물질만이 아니라 정신이 있는 것처럼 나라도 보이는 경제성장도 귀하지만 정신적인 기반 역시 중요한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정신적인 것이 경제적·물질적인 것에 선행한다. 기초가 튼튼하지 못한데 높은 건물을 지으면 지을수록 위험한 것이다.
7·4성명이 발표된 이래로 반공을 국시로 삼던 우리 국민의 정신적인 기반이 흔들리지 않는가 하는 염려도 해본다. 새마을 운동과 유신과업이 밖에 보이는 것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적인데도 관심을 크게 두어야 할 것으로 고려된다.
16세기에 서구의 두 나라가 비슷한 형편 가운데서 사회혁신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 방법이 아주 상반된 것이었다. 「프랑스」는 부패한 사회혁신을 위하여 피를 수없이 흘렸다. 그러나 영국은「요한·웨슬레」를 중심 하여 일어난 민족정신 개조 운동으로 피 한 방울 흘림 없이 새로운 사회를 이룰 수가 있었던 것이 역사가 증명한다.
돼지를 목욕시켜 새집에 넣는다고 새 가정이 될 수는 없다. 아무리 목욕을 했어도 돼지는 돼지요 돼지가 있는 곳은 돼지우리다. 변화될 사람이 아니고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 아무쪼록 그것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국가와 민족이 새로워지는 역사적인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파한 잡기 새 필진
▲이인호<고려대 부교수·문 박·소련 사>
▲조 순<서울대 상대교수·경제학 박사>
▲정근모<한국사학원 교수·이박>
▲박조준<영락교당 회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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